휴대전화에 리모콘,열쇠,지갑 기능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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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휴대전화 이용자는 20억 명에 이른다. 그들 대부분은 일본 샤프사의 최근 히트작 905SH 같은 최첨단 휴대전화기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지 모른다.

일본 3위의 이동통신사인 소프트뱅크의 보다폰 가입자를 겨냥해 출시된 이 전화기는 스테인리스 프레임과 6.6cm 길이의 검은색 LCD 화면을 자랑한다. 디지털 TV 9개 채널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와이드 스크린은 90도 회전이 가능하다. 인터넷 검색뿐 아니라 직불카드, 음악 감상, 사진 촬영 기능도 있다. 일본이나 한국 밖에선 보기 힘든 휴대전화기다.

소비자 가전 분야의 강점과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에 일찍 투자한 덕분에 일본 이동통신 업계는 세계 대부분과 비교해 기술 수준이 수년 앞서 있다. 가위 휴대전화 천국이라 할 만하다. 도쿄의 지하철 승객들은 휴대전화로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음악을 들으며, 게임을 한다. 쇼핑객들은 식료품 가게에서 휴대전화기로 지불하고, 위성추적장치(GPS) 유도를 받는 지도를 보면서 거리를 거닌다. 이 두 가지 기능은 일본의 신형 휴대전화기에 대부분 장착됐다.

일본의 이동통신 수준은 앞으로 훨씬 더 나아진다. 다음달부터 ‘번호이동’제가 도입되면 일본의 휴대전화 이용자들은 기존 번호를 바꾸지 않고 가맹사를 변경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NTT 도코모, KDDI의 아우(au), 소프트뱅크의 보다폰 등 3대 이동통신사 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진다. 이동통신 3사는 마케팅 노력을 강화하고, 신형 전화기와 더 빠른 무선망을 선보이며 일본을 이동통신 강국에 한 발 더 다가가게 한다. 무선 경매회사인 데나의 CEO 남바 도모코는 “번호이동은 온갖 불확실성을 초래한다”며 “우리로선 극적인 변화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은 문자 메시지 전송, 이동 중 내려받는 컬러링 서비스 등 휴대전화기 혁신에서 세계를 주도했다. 그러나 이용자가 별문제 없이 이동통신사를 바꾸게끔 하는 데는 뒤졌다. 미국과 유럽 대부분의 휴대전화 이용자들은 지난 몇 년 사이에 번호이동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일본의 이동통신사들은 올해 초가 돼서야 정부 요구를 받아들여 10월 24일부터 번호이동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용자 중 몇 명이 실제로 가맹 통신회사를 바꿀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일본 내 이동통신 시장의 56%를 차지하는 선두업체 도코모가 가장 큰 피해를 보리라 예상된다(KDDI의 점유율은 28%, 소프트뱅크 소유의 보다폰은 16%).

반면 일본의 휴대전화 이용자들은 업계의 경쟁 심화로 이득을 보게 된다. 새로운 규정에 때맞춰 날렵한 디자인의 휴대전화기가 속속 출시된다. 예컨대 음악 내려받기, 무선 결제, 특히 디지털 TV 등 광대역 기능에 역점을 둔 제품들이다. 올 초 보다폰이 디지털 TV를 장착한 휴대전화기(905SH)를 첫 출시하자 도코모와 KDDI도 잽싸게 자체 모델을 내놓았다. KDDI는 이용자 2명의 화상통화가 가능한 휴대전화기도 출시할 계획이다(이 회사로선 최초다).

일본의 휴대전화 이용자들은 이제 곧 음악 선택 폭도 더 넓어진다. 일본음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판매된 디지털 음악 2억6800만 곡 중 90%가 아이튠스 같은 PC 기반 서비스 대신 이동통신 서비스사를 통해 내려받았다. 올 가을 새로운 휴대전화기 출시를 앞두고 아우(au)는 휴대전화기에서 노래의 질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디지털 기준을 마련하려고 야마하사와 공동작업을 벌였다. 도코모는 음악 분야에선 KDDI에 뒤졌지만 지난달 이동 음악 채널 한 개와 함께 고속 휴대전화기를 공개했다.

이것을 이용하면 포드캐스팅 방식의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이 가입자에게 자동으로(또 정기적으로) 전송된다. 도코모의 고이누마루 다쿠시 대변인은 “본인이 직접 프로그래밍해야 하는 아이팟과 달리 음악을 수동적으로 즐기는 한 가지 방식”이라며 “새로운 방식이지만 수요가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일본의 고속 이동통신사들은 이런 서비스를 가능케 해 준다. 도코모의 중역들은 기존의 3세대 네트워크가 담당하던 범위를 확대하면서도 속도가 10배나 빠른 3.5세대 네트워크로 교체하는 작업에 올 회계연도에만 55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KDDI 측은 올해 자사 네트워크 개선에 39억 달러를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대부분 자료 올리기 속도를 높이는 데 쓰인다). 도쿄 다이와연구소의 분석가 니시무라 겐지는 “이용자가 휴대전화기로 제작한 비디오 클립을 자신의 블로그나 유튜브(YouTube) 같은 웹사이트에 올리기가 더욱 쉬워진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의 궁긍적인 목표는 휴대전화기가 가입자의 바쁜 디지털 생활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KDDI의 사토 마키 대변인은 “우리는 휴대전화기를 ‘개인 정보 소통 장치’로 만들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런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현재 일본의 휴대전화기에 대개 내장된 무선인식(RFID) 칩을 활용해 전화기가 기업의 ID 카드, TV 리모콘, 문 열쇠, 심지어 지갑 기능까지 하게끔 하는 일이다. 3대 이동통신사는 이미 가입자가 휴대전화기를 직불카드로만이 아니라 식료품·기차표 등 모든 물건 구입에 쓰도록 허용한다. 번호이동제 실시를 얼마 앞둔 상황에서 이동통신사들은 신용카드 기능도 제공하고 나섰다.

휴대전화기를 신용카드로 쓸 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보안이라고 도코모 임원들은 지적한다. 최근 이 회사는 가입자가 휴대전화기를 분실했을 때 피해를 줄이는 갖가지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했다. 예컨대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휴대전화기 대신 도코모의 서버에 저장하고, 가입자가 휴대전화기를 잃으면 원격조종으로 기능을 정지시키는 방식이다. 도코모는 지문·음성·얼굴 등 생체 정보를 통해 가입자를 인식하는 기능을 지닌 휴대전화기도 곧 출시할 계획이다.

한 가지 역설은 이동통신 이용자 대부분이 10월까진 통신사를 바꾸지 않으리라 예측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용자들은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덕에 혜택을 누린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런 기술혁신이 자신들에게도 일어나길 고대하는 수밖에 없다.

강태욱 t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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