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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사태 1주/전택원 홍콩특파원 현지취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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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경대 “피는 피로… ”대자보/발길 뜸한 광장에 홍기만 “펄럭”/제2시위 우려 군증강… 검문검색 강화/대학생 “현 지도층으로 미래는 없다”
89년 6월4일 새벽.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계엄군의 무차별 발포로 숱한 희생자를 낸채 강제점거된 북경 천안문 광장.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일 광장과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인민대회당 혁명역사박물관 등의 스카이라인을 따라 때마침 열리는 국제 아동절 행사를 축하하는 거대한 홍기들이 펄럭이고 있다.
그러나 광장은 북경 공안당국이 이행사를 빌미로 모든 차량과 행인의 진입을 차단시켜 인민영웅기념비를 고도처럼 남긴채 텅비어있다.
이로 인해 국제아동절 축제용의 붉은 깃발들은 거대한 광장의 정적에 압도되어 오히려 1년전 그날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6월의 북경은 이처럼 언뜻 보기에는 평온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그날」의 진영인 북경대를 비롯한 시내 각 대학 캠퍼스에는 삼엄한 검문검색에도 불구하고 「피는 피로 갚자」「뼈는 뼈로 갚자」는 피맺힌 구호의 대자보들이 나붙어 있다.
밤 8시부터는 북경시내 전역에서 검문검색이 한층 강화돼 요시찰 대학생들이 공안당국에 속속 연행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외국인이라도 여권을 소지하고 있지 않으면 일단 연행돼 봉변을 당하기 일쑤다.
이같은 분위기에 눌려 외국인 여행객들은 대부분 밤 8시 이후에는 외출을 삼가고 있다.
반면 지난해 6ㆍ4 천안문 유혈진압사태 이후 줄곧 제2의 천안문사태 발발을 우려하고 있는 중국 당국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번 6월4일만큼은 아무일 없이 보내야 한다』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달 15일께부터 북경 외곽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는 보강에 보강을 거듭,27개 보병사단과 7개 탱크ㆍ포병사단으로 늘어나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북경교외 무경북경지휘학교 훈련장에서 시위진압 기술시범이 있었다. 3천명의 시위진압 경찰이 동원된 이날 시범식에는 장쩌민(강택민)총서기,리펑(이붕)총리,차오스(교석) 야오이린(요의림) 숭핑(송평) 왕쩐(왕진) 등 당과 국무원의 최고지도급 인사들이 대거 참관,이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보여주었다.
작년 그날 이후 중국 당국은 지난해 10월부터 북경대 신입생들에 대한 1년간의 군입영 훈련을 비롯,당원재등록 사업 등 대대적인 탄압정책을 써왔다.
체제의 안정을 위한 강ㆍ온의 양동작전을 펴온 셈이다. 이런점을 반영,양상쿤(양상곤) 국가주석은 최근 『이제는 작년과 같은 소요요인은 청산됐다』고 호언했다. 대학생들의 움직임도 아직은 겉으로 두드러지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철저한 통제속에 강제로 유지되고 있는 표면적인 안정과는 달리 대학생과 지식인들을 포함한 북경시민들의 불만과 좌절은 심각하다.
대학생들은 『공장이나 농촌에서 하는 사회실천의 연장으로 군사훈련을 시키면서 왜 해외에 나가있는 당간부 자제들은 훈련을 시키지 않는가』라는 불만을 털어 놓는다.
대낮에도 천안문 광장을 비롯한 번화가에는 사복차림의 군ㆍ경들이 배치돼 있는 상황에도 대학생들은 고저우언라이(주은래)와 이붕의 초상화 사이에 완리(만리)의 초상화를 붙여 놓고 있다.
주와 이가 둘다 국무원 총리지만 이들 둘간의 차이는 만리가 된다는 풍자인 것이다.
이와 함께 북경대의 기숙사에는 수많은 마오쩌둥(모택동)의 초상화가 붙어 있다.
당국은 이같은 행위가 학생들이 진정 모를 숭배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당국은 이의 철거를 명할 수도 없는 처지다. 학생들은 바로 이점을 노려 모와 현정부를 싸잡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현지도층으로 중국의 미래는 없다』『이제는 보다 교육받는 신세대가 등장해야 할때다. 우리는 그때까지 결코 의지를 꺽지 않을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대학생들의 정중동이 물밀듯 밀려들 외국인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9월 북경아시안게임을 눈앞에 두고 있는 당국의 통제와 언제 맞부딪칠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저녁 8시30분 박명속에 오성홍기의 하강식이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는 텅빈 천안문광장과 북경에 진출해 있는 미국식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상점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인파. 수백명의 희생자를 낸 「6ㆍ4사태」 1주년을 앞둔 북경의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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