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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예순에 미국 한의사로 '제2 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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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방황하는 중년 남성들이 많다는 한국 뉴스를 접할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좌절하기보다는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 해본 것을 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뚫어나가면 일이 쉽게 풀릴 겁니다."

국민은행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던 금융맨 임헌균(林憲均.62)씨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의사로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일구고 있다.

林씨는 1997년 56세의 나이에 LA 인근 삼라 한의과대학에 입학, 4년간의 과정을 마친 뒤 2001년 캘리포니아주 한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이어 LA 한인타운에 '금빛사상체질 한의원'을 열었다.

고려대 법대(61년 입학)를 졸업한 林씨는 67년 국민은행에 입사, 미국 이민을 위해 90년 사표를 낼 때까지 30여년간 국민은행에서 근무했다. 대전지점 신입행원 시절 사내 수필.논문 공모에서 모두 1등을 차지한 것을 계기로 윗사람들의 눈에 띄어 본점 기획조사부로 스카우트되면서 林씨는 소위 '출세 코스'를 밟았다.

77년 행장 비서실에 들어간 이후 비서실장과 지점장을 번갈아 거치며 은행장만 5명을 보좌하는 기록도 세웠다. 이후 여신부장.국제부장을 거치고 이사 승진코스로 불리던 종합기획부장 자리에 있던 중 갑자기 이민간다며 사표를 냈을 때는 은행 전체가 술렁거릴 정도였다.

"당시 이상철 행장이 '이사를 시켜줄 테니 이민 가지 말라'고 말렸죠. 그런데 당시 교장을 하던 처남이 유전적인 천식으로 50대에 죽었고, 같은 질환을 앓던 아내도 '여기 있으면 나도 오래 못산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어렵게 결심을 굳혔습니다."

물론 '아내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이민 결심의 직접적인 동기가 됐지만 끝없는 접대문화, 개인의 삶이 없는 꽉매인 직장생활에 대한 염증도 林씨에겐 '새로운 인생'에 대한 갈증을 더욱 부추겼다고 한다.

해외연수가 극히 드물던 70년대에 이미 자신이 직접 계기를 만들어 일본과 네덜란드에 연수를 다녀올 정도로 일찍이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났던 林씨는 "사람들은 다들 나를 출세한 은행원으로 부럽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우리가 너무 얽매여 사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충남 연기군에서 유명한 한의사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한의학에 관심이 있었던 데다 본인의 신장결석, 어머니의 간경화 등을 한방으로 완치한 경험에 힘입어 林씨는 91년 LA에 이민온 후 혼자 한의학을 공부해 총명탕.정력증진제 등을 만들어 팔았다. 한의대에 다니면서는 수백가지 약초의 성미와 약리작용 등을 쉬운 문장으로 만들어 외우는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했다. 지금도 그 자료가 LA 지역 한의대 학생들의 '바이블'로 통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저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미국에 온 뒤에는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베푸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지요."

林씨는 현재 피부병과 여성 자궁질병 등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잘 안되는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미국으로 온 뒤 천식이 완쾌됐다는 부인 구영숙(具英淑.55)씨와 제임스(33.한의사).티모시(30.은행원) 등 두 아들과 함께 팔로스버디스에서 검소하게 살고 있다.

LA=이원영 미주중앙일보 기자, 사진=LA지사=전홍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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