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된 후(정치와 돈: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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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YS씀씀이 야때보다 호전/중앙당ㆍ유지 지원… 지구당도 넉넉(주간연재)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이 지난 4월 「박철언발언파문」으로 끓어있을 때 공격대상으로 삼은 공작정치의 하나라고 흘린 게 돈줄죄기였다.
김대표측근들은 소련 방문후 돌아와보니 김대표의 후원자나 기업쪽에 관계당국이 김대표의 자금 파이프라인에 압력을 가하고 있었고 이때문에 야당시절보다 자금사정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당시 관계당국에서 『대기업의 기획조정실을 찾아가 자금라인을 일원화하라』 『YS쪽에는 별도의 파이프가 필요없다』 『이를 어기면 세무조사 대상이 된다』는등 YS의 후원세력 차단을 조직적으로 꾸미고 있다는 「설」을 내놓고 불평했다.
이 문제는 그후 청와대회동에서 노대통령이 『여당으로 들어온 이상 야당시절과 똑같으리라 생각해선 안된다』며 여권의 정치자금 관리시스팀을 김대표에게 설득해 해명됐었다.
현재 김대표에겐 「재정집행권」은 없지만 공식적으로 쓰는 돈은 당비로 다 처리되고 있어 과거 총재 혼자 당살림을 꾸릴 때의 야당시절보다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
당의 고위재정관계자는 『대표최고위원으로서 격에 맞게 자금을 쓸 수 있는 시스팀속에 김대표가 처음 생활할 것』이라며 『김대표 나름의 비자금관리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자금환경의 호전을 주장.
그러나 김대표측에선 『대통령선거를 치러봤는데 무슨 소리냐』며 은근히 자금악화를 시사하면서 『다만 여권의 제2인자로서 여권의 정치자금 체계에 충실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87년 12월 대통령선거이후 4당체제의 구민주당 시절까지 김대표가 정치자금면에서 곤궁하다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고 89년 6월 첫 소련 방문때나 지난번 2차 방소때 주변자금의 흐름이 상당히 원활하다는 느낌을 줄정도였다. 두차례 모두 북방 외교에 기대를 두는 전경련등 기업쪽에서 체계적으로 후원해줬다는 후문.
특히 4당시절 마지막 청와대회동 12ㆍ15회담(89년)을 전후해 수십억원대 규모의 정치자금이 4당에 분배됐다는 설이 있으며 그당시 김대표쪽도 여유있는 분위기였다.
대충 작년연말부터 3월말 방소까지 김대표쪽의 자금사정은 윤택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며 김대표가 방소후 다시 야당식의 자금조달을 하려다 박철언쪽의 견제가 있었고 이것이 내분을 재촉했다는 후문이다.
어쨌든 김대표의 돈줄죄기설이 퍼져나가자 민자당내 민주계 의원들은 물론 상당수 공화계도 덩달아 「지구당 꾸려가기」가 힘들다는 하소연을 했고 계파 최고위원실 주변에 얼씬거리며 자금지원을 요청하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띄기도 했다.
이들의 푸념을 종합해보면 「얼굴 내밀라」는 행사초청장이 야당때보다 2∼3배 불어나 경ㆍ조사 등 행사참석 횟수가 그만큼 늘었고 따라서 소위 「품위유지비」가 2∼3배 증가했다는 것.
그 반면 야당때 『고생한다』고 돈을 조금씩 대주던 사람들도 으레 중앙당에서 지원이 있을줄 알고 돈줄을 거둬갔고 새로 사귄 유지들은 손을 내밀만큼 친밀하지 않아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기도출신 K의원의 4월 지역구 「경영실적」을 보면 야당시절 평균 지출의 2.4배인 1천2백만원을 쓰고 들어온 돈은 1.6배 늘어난 8백만원 수준.
K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3배 늘어난 초청장을 엄선해 1백여군데 자리를 빛내주다 보니 화환비ㆍ선물비 등이 엄청 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며 과거와 달리 ▲C급화환을 5만원짜리로 ▲3만원짜리 봉투를 5만원으로 ▲결혼주례시 3천원짜리 앨범에다 2천원짜리 액자추가 ▲관광버스에 음료수 1박스를 2박스로 늘려 여당답게 인사치례를 하다보니 부담이 늘었다는 것.
그는 『경로당이나 부인회모임에 나갈 때 그쪽에서 여당의원답게 처신해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아 체면유지비를 늘려썼다』며 『그런데 중앙당쪽이나 유지들 지원이 시원치 않아 다시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푸념.
공화계의 K의원은 『여당됐다고 운동권학생들이 화염병을 던져 지구당 기물이 파손됐는데 누구하나 신경써주지 않는다』며 『여당되면 자금사정이 좋아질줄 알았는데 쓸 데만 늘었다』고 늘상 주장하고 있으며 민주계의 P의원은 『외형은 급신장했으나 내실은 형편없는 부실기업을 꾸려가는 기분』이라고 엄살이다.
특히 야당때는 자신이 속한 국회 상임위의 관련단체나 기업이 전화라도 하고 「때 되면」 챙겨주던 게 이제 『당연히 우리편』이라 생각해선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이들의 얘기다.
그러나 이같은 「죽는 소리」의 실상은 뜯어보면 상당히 과장된 측면이 많은 게 사실.
민정계의 재정관계자는 『엄살일 경우가 대다수』라며 『여당식 노하우를 모르거나 알아도 여당된지 얼마 안돼 돈줄을 활용하기가 꺼림칙해 일시 주춤하는 것』이라고 단정하면서 아마 월 1천만원대이상의 자금지원처가 생겼을 것이라고 추정.
충남의 모의원 경우를 보면 그같은 지적은 상당히 수긍가는 측면이 있다.
현지에서 돈을 워낙 안쓰고 재력이 빈약해 모임을 가져도 대중음식점만 찾아 「밥집 손님」이란 별명이 붙은 그에게 저녁모임의 스폰서가 붙고 부동산붐으로 졸부가 된 유지들이 어울리려고 서로 달려들어 스케줄짜기에 바쁘다는 것.
현재 중앙당에서 지구당에 내려가는 지원금은 대충 3백만원 수준이며 기존 후원조직만 잘 가동해도 5백만원이상은 걷혀 품위관리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계의 서울출신의원은 『과도기적 현상이며 야당스타일이 겹쳐 「죽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라면서 『당이 제모양만 갖추면 금세 풀려갈 것』이라고 풀린 돈주머니 사정을 털어놨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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