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대중화의 새로운 가능성(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색다른 초청장이 집으로 전달되었다. 「서초 미술인 초대전」. 서울 서초구에 살고있는 미술가 30여명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 구민회관에서 초대전을 갖는다는 구청장의 초청장이었다.
구청 청사에서 미술전을 연다는 것이 생소했고 관청이 지역 구민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 의외였으며 또 그 전시회에 지역주민을 초청했다는 사실이 뜻밖의 고마움으로 전달되었다.
그 전시회가 어떤 경로를 거쳐 성사되었는지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뜻밖의 초청장에서,관청이 지역예술가들에 대한 깊은 애호의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 작은 행사로 말미암아 지역 관청과 지역주민들이 공동체적 문화공간을 이룩하자는 큰 계기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다.
문화,그 중에서도 예술문화는 예술가의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노력,그 뒤를 뒷받침하는 애호가 집단의 후원에 힘입어 생성되고 확대된다. 뿔뿔이 흩어져 외로운 예술의 정열과 자기고집에 집착하는 예술가들의 숫자는 우리의 주변에 수없이 많이 있지만 상업예술의 혼탁속에서 그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혼탁속에서도 「순수음악과 대중음악 사이의 벽 허물기 위한 박인수 가곡의 밤」 또한 음악평론가 이강숙교수와의 협력으로 이룩해낸 최근의 성과였다. 『가고파』 『그대의 찬손』에 이어 『아침 이슬』 『친구여』 등 대중가요를 열창했을때 청중과 성악가는 한 마음이 되어 합창의 하머니를 일궈냈다.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의 만남이고,그 만남을 가로 막았던 벽을 허무는 작업이기도 했다.
상업주의가 판을 치는 예술풍토에서 예술가 본연의 고집과 열정을 보여주는 사례는 최근 무용계와 영화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용가 서정자교수가 자신의 사재를 털어 땅을 사고 기업의 협조로 건물을 지은 「한국 발레 하우스」의 개관 또한 한 무용가의 강한 집념과 높은 뜻이 합쳐 이룩한 문화적 성과다.
서양기법의 발레에 한국문화를 접목시켜 한국발레를 정착시키겠다는 서교수의 집념이 발레교사 육성과 직업무용수 양성을 위한 한국 최초의 발레 하우스 건립으로 결실을 본 것이다.
나운규의 『아리랑』으로 시작되는 한국영화의 리얼리즘 전통을 재정립하고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빚은 6ㆍ25의 참화속에서 파괴되는 인간존재의 모습을 영상화하겠다는 정지영감독의 『남부군』도 감독의 집념과 영화적 열정이 낳은 또하나의 개가로 꼽히고 있다.
그의 영화가 관객의 어떤 심판을 받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구도자적 자세로 영화제작에 임한 감독의 자세가 한국영화의 새길을 열어줄 청신한 모습으로 돋보인다.
구민회관에서 구청주관으로 열린 미술전시회에서 우리는 지역공동체의 문화공간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제시될 수 있는 계기를 발견하게 된다. 이 작은 전시회가 구청과 동단위로,도시와 마을에서 부단히 이어지는 새로운 문화풍토의 점화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음악과 무용ㆍ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분야에서 외롭게 자신의 열정과 고집으로 자신들의 창의성을 꾸준하게 시도하는 예술가들이 그냥 외롭게 좌절하고 스러지지 않도록 지역공동체가,사회가,정부가 호응하고 지원하는 문화풍토가 확산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예술가적 열정이 「미친 쟁이」로 취급되지 않고 그의 열정과 광기가 공동체적 관심으로 확대되고 정부의 문화정책으로 조건없이,간섭없이 지원받는 풍토가 되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예술문화가 이땅에도 발을 붙이게 될 것이다.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장식품으로 하락하는 볼품없는 모방예술이 아니라,이젠 우리의 문화가 우리의 예술인들에 의해 그들의 영혼과 열정이 박혀있는 우리의 예술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들의 이웃으로서 그들의 열정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야 하며 그들의 예술활동에 기꺼운 마음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문화정책 또한 의도되고 계획된 「정부 생산」의 문화가 아니라 우리 예술가들의 순수한 영혼과 열정이 담긴 창의력의 분출을 위하여 「숨은 후원자」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