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 호주제 폐지 '長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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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정부 중앙청사에서 고건(高建)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이 상정됐으나 심의가 보류됐다.

조영동(趙永東) 국정홍보처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특별한 사유 때문이 아니라 중요한 법안이라 좀더 논의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심의를 보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무위원들 간에 가족 개념을 놓고 격론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추진해 온 호주제 폐지가 국무회의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국무위원들은 호주제 폐지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민법 7백79조의 호주와 배우자.혈족 등으로 개념 정의한 '가족'의 개념 부분이 문제가 됐다. 이날 김진표(金振杓)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가족 개념이 민법에서 사라지면 40여개 개별 법에서 '가족'의 범위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며 "호주제가 없어지는데 대한 보완책이 없는가"라고 물었다. 김화중(金花中) 보건복지부 장관과 성광원(成光元) 법제처장도 잇따라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지은희(池銀姬)여성부 장관이 "가족의 개념이 혈족 또는 혼인 등의 개념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방어했지만 高총리도 "가족과 혈족.혼인의 개념은 별개"라고 반론을 폈다.

高총리는 또 "최근 가족의 해체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민법에서 가족 개념을 삭제하는 것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며 다음 국무회의에서 한 번 더 논의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통상 각 부처 간에 사전 조율을 거치기 때문에 국무회의 의결은 통과의례인 점에 비추어 보면 호주제 폐지 추진이 심한 진통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부에서는 이날 심의 보류가 盧대통령의 재신임 문제와 연관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유림 등이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고 있어 정부가 반대론자들을 의식해 후퇴한 게 아니냐는 설명이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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