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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없는 음주문화 민속주 규제풀어 「옛맛」되찾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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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독특한 향과 맛을 뽐내며 삶에 한자락의 멋을 보대온 전래의 술, 전통민속주-.
우리의 전통주는 과연 있는 것인가,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 것인가.
국적이 모호한 문학환경과 관습 속에서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 중 음주문하 역시 국적없는 상대에서 헤매고있다.
프랑스의 코냑·적포도주, 독일의 백포도주·맥주, 소련의 보트카, 일본의 정종, 이탈리아의 밸므트, 그리스의 레치나, 중국의 노주,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미국의 버본 등 나라마다 고유한 술을 개발, 국민들이 즐기는 한편 세계시장까지 넘보고있다.
우리에게도 1백여종의 전통술이 있음은 『규합총서』 『양주방』 『산림경제』등의 문헌에 잘 나타나 있지만 기껏 탁주·소주·두견주·경주강주·소곡주 등만이 떠오를 뿐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소위민속주의 제조와 시판을 막아온 알콜도수 규정인 주세법 시행령 제1장과 주세사무처리규정을 개정, 국세청장이 이를 허가해줄 수 있도록 길을 터놓았다.
이 같은 조치는 지난해 7월 국내시장이 양주에 개방된 것과 관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민속주를 발굴, 보급해야겠다는 반성에서 취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민속주 제조·시판허가를 얻은 것은 면천두견주(90년), 용인민속주(74년), 부산금정산주(80년), 서울삼해주 (85년), 제주오메기주, (83년)등 일곱가지.
민속주는 문화부장관의 추천, 학계와 공무원이 참가하는 주류심의위원회 심의절차를 거쳐 지정된다.
민속주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종목은 일단 시험제조면허를 받게 되고 국립보건원과 국세청기술연구소에서의 주질검사를 받은 뒤 판매구역을 제조업자가 정해 판매허가를 신청하면 국세경장이 면허를 발부하는 과정을 밟게된다.
현재 주질검사에 통과한 민속주는 20종.
이중 문화부 문화재관리국에서「국가대표」의 자격이 있다고 판단, 제조자에게 무형문화재 지정을 한 것은 문배술, 경주교동법주, 당진면천촌. 견주 등 세가지.
두견주는 본면허를 얻어 면천지역에서 판매중이며 나머지 두가지는 이달말께로 예정된 본면허(제조·판매)를 기다리고있다.
문화재관리국 실무진 등은 세가지 국가지정 민속주 가운데 세계를 향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술로. 단연 문배술을 꼽는다.
이 술은 브랜디·위스키·럼·보트카 등과 같이 증류주(스피리트)인데다 도수도 40% 이상에서 제맛을 나타내기 때문에 세계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입에 댈때 거부감이 없고 배의 향기를 머금어 마신 뒤 숙취가 전혀 없는 이 술은 밀누룩·좁쌀·수수 등을 혼합해서 만든 소주다.
실제 제조과정에서 배는 사용하지 않지만 1년정도 옹기 속에서 보관하면 우리의 재래종배인 문배냄새가 난다고해 문배 또는 문배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산지는 평양으로 고려초기 왕건에게 이 술을 진상했으며 고려중엽 시인 김기원이 대동강변에서 이 술로 시흥을 돋웠다는 기록도 있다.
이 술의 제조기술 보유자로 인간문화재86호에 지정된 이경찬옹(75)에게 지난2월 시험제조허가가나면서 이옹이 제조한 문배술이 벌써 국빈들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술로 대접돼 호평받았다고 하며 알음알음으로 이 술맛을 본 애주가들도 고급 양주보다 맛과 향이 훨씬 훌륭하다고 경가하고 있다.
이옹은 이 술이 제 맛을 내려면 60%정도의 도수를 유지해야하지만 법규제 때문에 40%로 편법 제조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본허가가 나올 때 이점까지 고려됐으면 한다고 말한다.
또 문화부관계자들은 민속주가 전통술로서 위치를 굳히려면 판매지역제한도 민속주에 대해서는 물어야 할 것이고 이는 기존의 양조업자들이 양해할 경우 가능하리라고 보고있다.
현재 우리국민은 맥주(45.3%, 89년)를 가장 많이 마시고 있으며 소주와 막걸리는 해마다 수요가 크게 줄고있다(소주는26.8%, 막걸리는24.9%).
반면 수입양주의 소비는 해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있다.
88년에는 3만4천7백상자(2백25만 달러 상당)가 수입돼 87년보다 52%가 증가했으며 지난해 7월 양주시장이 개방된 뒤에만도3백만달러 상당의 양주가 수입, 소비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국산양주도 가세, 해마다 33%가량의 소비증가세를 보이고있다.
맥주·양주 속에서 흐늘거리는 우리의 음주문학 정통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민속·전통주에 대한 각종 제조허가상의 규제나 판매지역제한 등을 과감히 물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김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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