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돈장사' 90년 만에 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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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의 외채 부담이 90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투자 소득을 능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 저널은 올 2분기 미국이 외국에 갚아야 할 원리금이 해외투자로 벌어들인 돈보다 25억 달러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미국인 가구당 약 22달러를 외국에 진 빚을 갚는 데 쓴 꼴로, 1년 전 평균 31달러를 벌어들였던 것과 대조된다.

주원인은 미국의 외채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미국 대외채무는 13조6000억 달러로 가구당 11만9000달러에 달한다. 미국의 해외 자산을 제외한 순채무도 2조5000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은 그간 낮은 이자로 외국에서 돈을 빌려 쓰고, 남은 돈을 해외시장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방식으로 나라 살림을 꾸려왔다.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액을 가진 중국이 2001년부터 2500억 달러의 미국 국채를 매입해 평균 5% 수익을 낸 반면, 중국에 국채를 판 돈으로 미국은 같은 기간 해외투자를 통해 평균 8%의 수익을 냈다. 이머징 마켓에서는 무려 22.3%의 고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2004년 6월 1%이던 연방기금금리가 5.25%까지 오르면서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더 이상 낮은 금리로 외국 자금을 빌려 고금리 과실을 따먹는 '돈장사'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골드먼 삭스 런던법인의 짐 오닐 수석 애널리스트는 "외채 증가는 미국 국가 신용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달러화 하락 압력을 높일 것"이라며 "경제학자들이 경고해온 것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니 글로벌 이코노믹스의 누리엘 루비니 회장은 "미국인들이 빚과 소비를 줄이는 작업을 늦출수록 훗날 감당해야 할 경제 충격도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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