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품값 턱없이 오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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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국내 미술품값이 턱없이 오르고 있다.
잘 알려진 인기작가들의 작품이 지난해에 비해 무려 2∼3배씩 오른 값으로 팔리고 있으며 이밖에 대부분 작가들의 작품 값도 1년새 30∼50%씩 올랐다.
일부 작고작가의 작품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우편엽서 크기(1호)에 1억원을 육박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고 박수근 화백의 2호짜리 소품이 집한채 값인 1억5천만원에 팔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의 작품은 지난해만해도 호당 2천만원선에 거래됐었다.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의 산수화나 박수근·이중섭·권진규 등 인기 작고작가들의 작품은 내놓는 것이 거의 없고 찾는 이들은 많아 그야말로「부르는게 값」일 정도다.
이 같은 국내 미술품값의 급등은 우선 일부부유층의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 여기에 최근 부동산투기억제정책과 증권시장의 침체가 이를 더욱 부채질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적 추세로 볼 때도 국민소득이 5천달러에 육박하면 미술품 투자가 성행하기 시작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제 우리나라가 그 범주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엔 부유층들은 물론 중산층까지 나서 「그 동안 한번도 값이 내린 적이 없는」미술품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술품을 걸어놓고 실컷 감상하고 자랑도 한 후 되팔아도 상당한 이익이 남는 현실이 됐으니 「님도 보고 뽕도 따는」 투자가 아닐 수 없게된 것이다.
이 같은 미술품값의 급등현상은 『월간미술』 5월호에 실린 최근의 미술품값 시장조사결과 여실히 드러났다.
『월간미술』은 지난해 3월호에서도 이 같은 시장조사를 실시, 두 조사결과를 비교해 보면 지난 1년새 미술품 값의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다(별표 참조).
5월호의 조사는 지난4월 한달 동안 전시회를 열었던 서울시내 유명화랑에서 밝힌 호가를 밝힌 것이며 지난해 조사는 유명화랑의 호가를 최고·최저값을 버리고 중간치를 취한 것으로 다소 차이(소품과 대작의 호당 가격은 꽤 차이가 난다)는 있을 수 있겠지만 거의 정확한 비교 자료가 될 수 있다.
이 조사결과를 보면 미술품값 급등의 견인차는 서양화와 조각, 그 중에서도 인기작가의 작품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3월 타계한 고남관씨 작품은 지난해 호당 50만∼80만원에 거래됐으나 최근 팔린 『환상』(12호)은 1친8백만원에 거래돼 호당 1백50만원을 기록했다.
또 변종하씨 작품은 호당 80만원정도에서 1백60만∼ 2 백만원으로, 장욱진씨는 2백만∼2백50만원에서 4백만원 이상으로, 황유엽씨는 80만원에서 1백50만윈으로 각각 올랐다.
조각작품도 대체로 2∼3배씩 올라 지난해 5백만∼6백만원하던 김정숙씨의 반신크기(중) 대리석 작품이 올해엔 1천5백만원을 호가했고 김영중씨의 브론즈조각도 3백만∼4백만원에서 6백만원으로 올랐다.
작고 작가인 권진규씨의 작품은 한점에 3천만원 이상을 호가하지만 작품을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서양화·조각과 비교해 볼 때 동양화 값은 대체로 덜 오른 셈. 간경자·박노수·오태학·장우성·서세옥씨 등·원로작가들의 작품 값은 두배 가량 뛰었지만 중견작가들은 거의 그대로이거나 약간 높아졌다.
이 같은 미술품값 급등을 차치하고라도 우리나라 미술품값이 과연 온당한 것이냐는 의문이 계속될 정도로 미술시장의 가격형성에 혼선과 불합리가 빚어지고 있다.
예술작품이 마치 땅값이나 금값처럼 거의 크기(호부)에 따라 값이 정해지는가하면 몇몇 인기작가가 값을 올리면 이와 비슷한 경력의 작가들도 덩달아 값을 올리는 등 예술적 평가와는 거의 상관없이 값만 뛰고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해외미술시장 개방과 국제화에 즈음해 국내 미술품 값도 전반적으로 다시 조정되어야한다는 여론이 높다. 국내에서는 호당 수백만원하는 작품이 외국에 나가면 몇십만원도 못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문에 일부 화상들은 외국에서 고김환기씨나 황규백·남관·변종하씨 등의 초기작품을 비교적 헐값에 사들여와 국내 자격에 버금가게 팔아 큰 이익을 남기기도 한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씨는『미술품 가격은 경매제도를 통해 정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전제하고 『아직 경매제도가 자리잡지 못한 국내 현실로 볼 때 미술애호가들이 작가의 이름에만 매달리지 말고 좋은 작품을 분열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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