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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추억] 가곡 대중화 헌신 애창곡 '비목' 남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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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국민가곡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는 '비목(碑木.한명희 작사)'의 작곡가 장일남(전 한양대 음대 교수)씨가 2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74세. 고인은 1990년부터 알츠하이머 병으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투병 생활을 해왔다.

고인은 처음 들어도 귀에 쏙쏙 와닿는 유려하고도 독특한 선율 감각을 발휘해 '기다리는 마음''달무리''접동새' 등 예술가곡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국립오페라단이 창단 기념으로 초연한 오페라 '왕자호동'(62년)을 비롯해 '춘향전' '시집가는 날' '원효대사' '불타는 탑' '녹두장군' '수양대군'등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춘향전'은 66년 국내 초연 이래 미국, 일본, 프랑스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되는 등 한국 창작 오페라 가운데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다. 이밖에도 교향시 '한강' '조용한 아침의 나라' '광복'을 작곡했다. 그의 대표적인 가곡 '비목'은 1991년 MBC 설문조사에서 '한국인 애창가곡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고인은 황해도 해주 태생으로 해주사범학교를 거쳐 평양음악대학을 졸업했다. 작곡가 김순남씨를 사사했으며 창덕.숙명여고 음악교사를 거쳐 한양대 작곡과 교수로 30여 년 재직했다. 서울아카데미심포니의 초대 음악감독도 역임했다.

TBC(동양방송)와 KBS.MBC의 클래식 프로그램에서 40년 넘게 지휘.편곡을 맡아 클래식 음악을 보급하는 데도 앞장섰다. 고인은 피아노 반주로 작곡된 한국가곡을 오케스트라 반주로 편곡, 대극장 무대에 올리는 방법으로 우리 가곡의 대중화에 앞장선 것으로 유명하다. 현악기 위주의 매끈한 편곡 실력을 선보여 음악계에서는 '장토바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탈리아의 지휘자 겸 유명 편곡자인 만토바니의 이름에서 따온 별명이다. 그는 70~80년대 붐이 일었던 '가곡과 아리아의 밤'에서 지휘를 도맡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편곡이 예술가곡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대한민국방송음악상(75년), 대한민국 최우수작곡상, 예술문화대상(이상 88년), 백상예술대상, 영평(映評)음악상(이상 92년), 서울정도 600년 자랑스런 서울시민상(1994년), 한국작곡상(2000년)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희자(62)씨와 딸 순(38), 아들 훈(33), 사위 백종수(41) 씨가 있다. 발인 26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 영안실 5호. 02-3010-3114.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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