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제목 외국어 남용 심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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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수입 외국영화의 제목중 상당수가 우리말로 얼마든지 개제가능한데도 외국어를 그대로 쓰고있어 외화제목이 우리말의 외국어오염에 앞장서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외화수입 추천권을 행사하는 문화부와 외화제목심의권을 갖고 있는 공연윤리위원회가 외국어사용 규제 규정을 마련해 놓고도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 무분별한 외국어 제목 사용을 부채질하는 골이다.
최근 상영이 끝났거나 현재 개봉중인 외화제목을 훑어보면 외국어침투 실태가 확연히 드러난다. 『블레임 람바다』『블루스틸』『더 플라이Ⅱ』『악령의 퍼스트 파워』『아이큐 제로』『마루타』『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패밀리 비지니스』『백 투 더 퓨처』『로드 하우스』『미스틱 피자』등 부지기수가 외국어 제목을 여과없이 쓰고 있다.
이중 『백 투 더 퓨처』는 「미래로 돌아가다」로, 『더 플라이 Ⅱ』는 「파리 속편」등으로 직역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패밀리 비지니스』의 경우 영화의 내용으로 보아 「도둑3대」또는 「도둑가업」등 얼마든지 의역가능한 것들이다.
외화의 외국어제목 사용은 홍콩영화에 이르면 더욱 심각하다. 『첩혈쌍웅』『지존무상』 『우견아랑』『정전자』등 한자로 써놓아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제목에서부터 『∼강시』니 『∼마담』등 잠깐 인기에 편승한 줄제목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외화제목에서의 우리말 실종은 제목을 외국어로 달아 확실히 외화로 보이게 하는 수입업자들의 상혼을 앞세운 압력에 문화부·공윤등 감독기관이 굴복하는데 주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문공부는 지난해5월 외화제목은 번역해 사용해야 한다는 행정명령 「외국영화 제명 유의사항」을 수입업체들에 통보한데 이어 관객의 70%이상이 외국어로 쓰인 외화제목의 뜻을 모르고 있다는 한 조사결과가 나오자 지난해10월 「외화제목 순화 심의기준」을 마련했었다.
문공부가 마련한 심의기준은 당초 외화제목은 번역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인명·지명등 고유명사는 예외로 인정키로 한 것이었으나 그 직후 우리말 제목으론 흥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업자들의 항의로 「중학교수준」정도의 외국어는 인정하는 선으로 물러서고 말았다.
「중학교 수준」이라는 모호한 기준때문에 문화부의 심의기준은 우리말 순화에 기여하기보다 오히려 외화제목의 왜곡을 거들기까지 하고 있다.
예를들어 『블루스릴』의 경우 Blue와 Steel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중학교 수준에서도 알수 있는 영어이기는 하지만 두 단어를 합친 Bluesteed이 강철로 만든 소형 권총임을 뜻하는 속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뮤직박스』『로드 하우스』등도 쉬운 영어이기때문에 제목사용이 가능하다는 억지논리가 통하게 돼있다.
최근 개봉된 『죽는 자를 위한 기도』『귀여운 여도적』등의 예처럼 좋은 우리말 제목을 쓸수 있는데도 이같은 외국어제목 남용은 우리말 경시풍조에 바탕을 둔 업자들의 상혼과 문화부의 우유부단한 자세에 전적으로 기인하고 있다.
영화관계자들은 과거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애수』(Waterloo Bridge), 『모정』(Love Is Many Splendored Thing),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등 원제보다 훨씬 나은 제목(물론 개중에는 일본에서의 개제를 그대로 쓴것도 많았다)이 사용됐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수입업자들의 자세전환을 아쉬워한다. <이헌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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