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문명을 거부한 소수 민족, 그 삶의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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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
임자경 옮김, 무우수
352쪽, 1만2000원

문명이 반드시 진보가 아니며, 행복을 약속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지은이는 캐나다 태생의 민속식물학자. 퀘벡 주의 여름 산 속에서 불을 끄고 길을 내고 나무를 하면서 야생에 이끌린 그는 14살에 콜롬비아로 간다. 남미, 나아가 자연과의 본격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 후 보르네오, 북극, 티벳, 캐나다의 숲, 중동의 사막 등을 여행하면서 문화의 다양성과 문명화라는 힘에도 굴복하지 않은 사회를 접한다. 스치는 바람, 비에 쓸려 닳아진 바위, 씁쓸한 나뭇잎에서 과거를 기억해내는 사람들, 사냥꾼이 떠돌고 표범의 영혼이 깃든 마술사가 아직도 먼 우주로 여행을 하며 노인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의미를 갖는 별세계다. 지은이는 산업시대와 무관하게 끈끈한 유대를 보여주는 작은 공동체의 소수 민족들과의 만남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우리 시대가 범한 패착들과 함께 보여준다.

이 지혜는 우리의 과학이 잃어버린, 땅으로부터 직접 얻은 것들이다. 북극 지방에 사는 이누이트 족 노인의 이야기다. 정착지로 이사하기를 거부했던 그 노인의 항복을 받아내 함께 가려고 했던 가족은 그의 도구를 모두 치워버렸다. 그랬더니 이 노인은 이글루 밖으로 나가 살을 에이는 겨울바람이 쌩쌩 부는데도 용변을 본 후, 침으로 언 똥을 날카롭게 다듬에 칼을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그 칼로 개를 죽여 그 갈비뼈로 썰매를, 가죽으로는 마구를 만들어 또 다른 개에게 채우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단다.

우리의 세계가 어떤 절대적 의미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습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며, 또 다른 선택,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알려준다고 지은이는 결론짓는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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