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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을 선택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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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34면

지난주 이 지면의 칼럼 "오늘의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라!"를 읽고 한 기업인이 편지를 보내왔다. "5년 후, 10년 후가 전혀 보이지 않는 '시계(視界) 제로'의 상태를 언제까지나 계속할 순 없다. 과거와 이념, 그리고 명분에 집착해 질척거리는 낙동강 전선에서 더 이상 허송세월만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상상력을 총동원하고 국민 역량을 총집결해 먹고사는 전쟁에서 확실하게 전세를 뒤집을 '오늘의 인천상륙작전'을 새롭게 감행하자"는 글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국익 차원에서 대통령과 언론, 여와 야가 싸움의 중단을 선언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해 국민.기업.나라가 함께 번영하는 길을 모색해 달라"는 당부도 있었다.

그렇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싸움의 관성이 지배하고 있다. 싸우지 않는 곳이 없다. '싸우면서 큰다'고도 하지만 이건 그런 선의의 경쟁이 아니다. 이미 경쟁의 원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심지어 경쟁을 악으로 보는 풍토 속에서 엉뚱하게 불필요한 시비와 싸움만 늘었다. 그것도 링 안에서 규칙을 갖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링 밖에서 난투를 벌이는 식이다. 노사는 물론이고 학교에서 스승과 제자가 싸운다. 대통령이 평검사에게 "막가자는 거냐"고 쏘아붙이고, 장관이 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는 식으로 말할 만큼 사회 전체가 경박한 싸움터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싸움을 말리고 시시비비를 가려줘야 할 최후의 보루인 법조계마저 수장인 대법원장의 발언이 불씨가 되어 법원.검찰.변호사단체 할 것 없이 전면적인 싸움이 노정된 상태다.

그렇다면 이렇게 온 사회가 서로 들쑤시며 싸워서 얻은 게 뭘까. 아무것도 없다(Nothing!). 서로 헐뜯고 쌈질만 일삼다 정작 우리 모두가 나가야 할 방향과 목표마저 상실해 버렸다. 서로 네 탓이라며 힐난하고 싸우는 사이에 대한민국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꼴이 되었다. 그러니 더 이상의 불필요한 소모전을 끝내야 한다. 시비를 위한 시비, 싸움을 위한 싸움의 못된 관성을 끊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멸한다.

번영은 선택이다. 반세기 전 아프리카의 가나와 경제수준이 같던 우리나라가 반세기 후 국민총생산에서 50배 차이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이 번영을 선택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과 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강력한 리더십과 잘 살아보자는 국민적 여망이 하나가 되어 숱한 난관을 돌파하고 이만큼 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하지만 세우는 데는 수십 년의 공력이 들지만 허무는 것은 순식간이다. 요 몇 년 새 정말 많이 허물었다. 이젠 더 허물 것도 없다.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분명한 새 목표와 비전이 있어야 한다. 하나 된 국민의 의지가 발동되어야 한다. 그것을 발동시키는 힘이 곧 리더십이다.

국민 3명 중 2명이 대통령이 잘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대통령에게는 1년 반 남짓한 시간이 부여돼 있다. 어영부영 보낼 수 없는 너무 소중한 시간이다. 살려야만 한다. 그러자면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먼저 대통령이 나서서 아집과 코드가 아닌 진정한 포용과 개방의 정신으로 국민적 화해와 통합을 늦었지만 선언해야 한다. 선언의 진정성이 좀 더 힘을 얻으려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문제에 대해 유연함을 보이고 헌법재판소장 공백 사태에 사과의 뜻이 담긴 유감을 표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잔뜩 엉킨 도면일랑 아예 찢어버리고 백지 위에서 다시 번영을 그리자. 이번에는 혼자 고집 부리지 말자. 시장에 맡기자. 경쟁이 최선의 정책임을 보여 주자. 국민이 신바람 나서 기꺼이 나서는 진짜 참여를 이루자. 그래서 다툼이 아닌 번영의 길로 나가자. 기필코 대한민국은 번영을 선택할 것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