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 대중화 바람이 불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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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점에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그림은 서민들에겐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수밖에 없다.
이같은 실정에서 서민들도 비교적 손쉽게 접근하고 즐길수있는 미술분야가 바로 판화다.
최근 미술계에서는 조용히 판화바람이 일고있어 미술의 대중화와 미술인구의 저변확대에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화랑가에도 예전에 비해 국내외 작가의 판화전이 자주 열리고 『판화는 인쇄물과 같은것』이라는 일반의 잘못된 인식도 서서히 바로잡혀지고 있다.
이런가운데 최근 판화제작 경험이 전혀 없는 중견 서양화가 18명이 무더기로 나서 판화를 직접 만들고 합동전시회 「판화18인전」을 열고있어 주목된다. 27일까지 갤러리서미((546)9470).
강광 김경인 박재호 서용선 숨결새별 심죽자 오경환 오세열 오수환 유연희 이남규 이두식 이부웅 이석주 이주영 최경한 한만영 홍정희씨등.
이들은 대부분이 40∼50대의 인기서양화가들로 유화 한점에 수백만원씩 팔리고 있지만 이번 전시회에 내놓은 판화(15호안팎)는 20만∼50만원 선이다.
이 전시회는 지난해 4월 문을 연 전문판화공방인 서울판화공방(대표 황용전·35)이 판화활성화를 위해 작가들에게 요청해 이뤄졌다.
황씨의 제의를 받은 작가들은 『그동안 판화제작을 배우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 미뤄왔다』며 흔쾌히 참여의 뜻을 밝혔다.
이들은 겨울방학을 이용, 몇개월씩 공방을 드나들며 처음으로 판화를 제작하면서 기술을 익혔다.
개관 2년만에 처음으로 판화전시회를 마련한 갤러리 서미측은 『이번 전시회는 판화작가가 아닌 서양화가들이 처음 만든 판화를 전시한다는데 뜻이 깊다』고 말하고 『이번 전시회가 끝난뒤 작가들과 함께 토의를 거쳐 판화전을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밝혔다.
판화는 비록 일반회화만한 호소력과 깊이는 없지만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감상하는데 별로 부족한 점이 없는「오리지널 작품」이다.
한 작품이 20점가량 복수로 제작되는 「복수미술」일뿐 작품을 원색 분해해 인쇄하는 복제품과는 엄연히 구별된다.
찍어낸다는 과정을 거쳐 제작되는 「간접미술」이다.
이 「찍어낸다」는 과정때문에 그동안 인쇄물처럼 잘못 인식되어왔으나 이제는 판화수요가 크게 늘고있다. 특히 판화는 아파트나 빌딩의 분위기에 갈 어울러 인기가 높다.
3년전부터 일부 대학(홍익대·추계예술대)에 판화과가 신설되고 판화공방도 두군데로 늘었다.
80년대들어 민중미술작가들의 목판화운동도 이같은 판화활성화에 큰 몫을 해냈다.
그러나 이같은 높은 수요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아직도 이렇다할만한 판화전문화랑이 없어 판화활성화가 제대로 이뤄지지않고있다. 일본만해도 판화전문화랑이 30여군데, 판화공방이 20여군데나 있다.
요즘 예성화랑에서 열리고있는 프랑스의 거장 조르주 루오작품전에 내걸린 판화작품이 한점(6호안팎)에 1천만원이상(일본등지에선 훨씬 더 비싸다)을 호가하는것을 보면 외국의 판화에대한 인식의 한 단면을 쉽게 엿볼수 있다. <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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