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휴대폰 재활용'은 후진국 수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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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 종로의 한 휴대전화 대리점. SK텔레콤.KTF.LG텔레콤 등 3개 이동전화 업체의 휴대전화를 모두 취급하는 곳이다. 올해 초만 해도 고객들이 보상을 받기 위해 가져오는 휴대전화기가 한 달 평균 100대를 넘었다. 보상 가격은 대당 2만원 수준. 그러나 지난 3월 휴대전화를 구입할 때 보조금을 줄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휴대전화기 수거량은 급감했다. 한 달에 10대 미만으로 줄더니 지난달엔 3~4대에 그쳤다.

열린우리당 홍창선 의원이 정보통신부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생긴 안 쓰는 휴대전화기는 1193만 대. 이 중 27.5%인 328만 대가 이동전화 업체에 의해 수거됐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엔 수거율이 17.9%로 떨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고객들이 쓰던 휴대전화기를 가지고 와도 아무런 보상을 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충분히 쓸 수 있는 휴대전화기도 장롱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이 여파로 중고 휴대전화기를 수출하는 업체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경제적 피해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휴대전화기를 만들어 팔고 서비스를 하는 업체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이동전화 업체들은 기기 보상까지 해주면 비용 부담이 너무 커진다고 주장한다. 또 휴대전화기의 수거는 제조업체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시행된 생산자재활용책임제도에 따르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올해 생산한 휴대전화의 15.4%를 수거해 재활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반대로 제조사들은 휴대전화기는 유통 대리점을 가진 이동통신 회사가 파는 상품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제조업체와 이동통신 업체는 휴대전화 수거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눴지만 비용 분담 문제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휴대전화기를 재활용하기 위한 제도를 갖추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04년 말 모든 이동전화 판매업체들이 반드시 휴대전화를 수거하도록 강제하는 '휴대전화 리사이클링 법안'을 마련했다. 쓰고 남은 것을 처리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갖춰야 '진정한' 휴대전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김원배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