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전후(戰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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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제 전후(戰後)가 아니다'. 1956년 일본 경제백서는 이렇게 밝혔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잿더미를 딛고 성장 궤도에 올라섰다는 선언이었다. 초대 일왕 진무(神武) 이래의 호경기라는 뜻에서 붙여진 '진무 경기' 와중이다. 흑백TV.세탁기.냉장고의 이른바 '3종의 신기(神技)'는 당시의 심벌. 돈에 구애받지 않는 젊은이의 자유분방한 성 풍속을 그린 이시하라 현 도쿄도지사의 소설 '태양의 계절'이 나온 것도 그때였다. '태양족'이란 말이 생겨났다. 백서는 '경기 회복을 예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정부도 적자, 기업도 적자, 가계도 적자'라고 했던 47년 백서와는 딴판이다. '경(輕)무장, 경제 우선'의 요시다(吉田) 총리 노선 덕분이다.

정치에서의 탈(脫)전후는 80년대 나카소네(中曾根) 내각 때 본격화했다. 그의 기치는 '전후 정치의 총결산'. 한마디로 요시다 노선의 부정이다. "요시다 노선은 방위를 미국에 맡기는 일국 평화주의다. 이것이 국민 정신을 비뚤어지게 했다. 국민의 국가에 대한 의식은 사회당의 '청년이여, 총을 잡지 마'라는 슬로건과 맞물려 약화됐다."('일본의 총리학', 나카소네) 자주 헌법 제정, 미.일 동맹 강화, 행정개혁은 나카소네의 핵심 구상. 그는 '미.일 운명공동체'를 내걸고 방위비의 국민총생산 1% 내 틀을 깼다. '국가'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 이 시기다.

91년의 걸프전은 일본의 전후 안보 체제에 일대 변화를 몰고 왔다. 130억 달러의 전비를 부담하고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이 그 계기. 자위대가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참가한다. 오자와(小澤) 민주당 대표가 '보통국가 일본'을 주창한 것이 이 무렵이다. 국가의 자립, 국제 공헌은 그 요체다.

아베(安倍) 관방장관이 20일 집권 자민당의 새 총재로 선출됐다. 첫 전후세대 총재다. 공약은 '전후 체제의 탈피'. "미군 점령하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헌법과 교육기본법이 그 대상이다. 국가관.애국심도 그의 화두다. 나카소네가 "아베는 사상도 철학도 없는 고이즈미와 다르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일 게다. 아베의 정책 구상에는 나카니시(中西) 교토대 교수가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전후 민주주의가 일본 제일의 적(敵)'이라고 했다. ('일본의 '적'') 전후라는 구체제와의 싸움은 불가피한 것 같다. 그것이 전전(戰前)의 국가주의로 둔갑해서는 안 될 텐데.

오영환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