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모이는 곳 ‘지옥’까지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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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흔히 ‘돈이 몰리는 곳에 장사꾼들이 몰린다’는 말을 쓴다.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현장에서 치열하게 부딪치고 살아가는 장사꾼들이 ‘돈 냄새’를 맡지 못할 리 없다. 그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장사꾼들 못지 않게 돈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최일선은 은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검은돈이 뒷문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돈은 어쩔 수 없이 은행 창구를 거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은행은 돈의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다.

최근 들어 은행들의 공격적인 지점 확장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은행권의 인수합병(M&A) 돌풍이 한 차례 몰아친 이후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은행을 중심으로 몸집 불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은행들이 어디에 지점을 늘리고 있느냐는 점이다.

각 은행들이 우량자산과 고객을 쫓아 점포를 신설 또는 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하면 철새처럼 돈의 움직임을 따라 은행들의 지점 이동이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단순히 고객 편의 차원에서 지점을 새로 늘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각 은행들이 실적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감안하면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곳에 지점을 신설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돈을 찾아’ 움직이지만 ‘돈이 돼야’한다는 얘기다.

가장 눈에 띄는 지역은 용인 동백지구나 파주 교하 등의 택지개발 지구다. 용인 동백지구의 경우 올 들어 각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지점을 열었다. 아파트 입주가 마무리되고 있는 용인 동백지구는 각 은행들이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지역이다.

먼저 포문을 연 곳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1월 동백지점과 동백역지점을 동시에 개점했다. 올해 신규 영업점 100개를 열겠다고 밝힌 우리은행은 최근 들어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가장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 8월 말까지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은 68개의 점포를 새로 냈다. 이춘우 우리은행 채널기획팀 부부장은 “이전에 지점이 없는 공백지역을 중심으로 지점을 늘려가고 있다”며 “용인 동백지구를 비롯해 죽전이나 동탄지구 등에도 지점 신설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에 이어 신한은행은 2월에 용인 동백지점을, 4월에는 동백역지점을 잇따라 개점했다. 이에 뒤질세라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역시 각각 3월과 4월에 잇따라 지점을 냈다. SC제일은행도 올해 문을 연 지점 2개 가운데 하나가 용인 동백점이다.

국민은행 채널기획부 유상훈 팀장은 “대부분 신규 택지개발 지구의 경우 이미 몇 년 전부터 계획이 발표되기 때문에 입주에 맞춰 각 은행들이 점포 신설을 계획하고 있었다”며 “대단위 주거단지가 들어서기 때문에 충분히 수요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파주 교하, 충청권도 몰려

용인 동백지구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지역은 파주 교하 지역이다. 하나은행이 제일 먼저 1월에 교하지점을 열었다. 이어 신한은행이 2월에, 국민은행은 4월에 교하지점을 열었다. 이 밖에 신도시로 부상하고 있는 구리 토평지구와 광교 신도시, 남양주 진접지구, 인천 송도 등지도 각 은행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지역이다.

신도시 외에 눈길을 끄는 지역은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로 땅값이 크게 오른 충청 지역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올 들어 9월 14일까지 총 19개의 점포를 신설했다. 이 중 4개 점포가 충청권에 집중됐다. 국민은행은 1월 충북 청원군에 오창지점을 개점한 데 이어 5월에는 청주 금천지점을 열었다. 이어 9월에는 충남 계룡시 금암 출장소와 충남 천안시 두정역 출장소까지 개소했다.

올 들어 8월 말까지 49개 지점을 연 신한은행 역시 1월에 천안불당지점을 연 데 이어 대전 송강지점(3월), 충남 조치원지점(3월)을 열었다. 특히 4월에는 대전 둔산동에 PB센터인 신한PB대전센터까지 개점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9월 신한PB부산센터를 시작으로 올 4월에는 대전과 대구에 잇따라 PB센터를 열어 지방 PB센터 시대를 열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PB센터가 서울에 집중돼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이색적인 행보인 셈이다. 하나은행 역시 1월 충남 연기군 행복지점을 열었고 7월에는 대전광역시에 대덕테크노밸리, 대전법원지점을 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지점을 신설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감안되겠지만, 돈이 몰리고 상권이 새롭게 형성되는 지역임에는 분명하다”며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곳에 점포를 낼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은행들의 지점 신설이 늘고 있지만 과거처럼 은행 입주를 환영하는 분위기는 덜하다. 이전에는 건물주들이 은행이 입주하면 월세 밀릴 걱정이 없고 깨끗하다는 점 때문에 선호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건물주들이 임대보다는 분양을 선호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은행이 많은 면적을 차지할 경우 분양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주를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최근에는 2층 또는 그 이상 층에 은행이 입주하는 경우도 많이 늘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일부 은행의 무분별한 지점 확장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말 그대로 돈을 따라 수익성이 되는 곳에 지점을 신설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막무가내 식으로 ‘덩치 키우기’를 할 경우 자산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은 각 은행에 지나친 점포 확대와 경쟁을 자제할 것을 지도하기도 했다. 특히 신설 점포의 경우 기존 영업점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큰 폭의 우대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등 과열 조짐도 보이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국민은행 채널기획부 유상훈 팀장

“고객과 불편 없는 소통도 중요”

“올해는 무리한 확장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동탄·동백 등 신규 택지개발 지구를 중심으로 지점을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국민은행 채널기획부 유상훈 팀장은 ‘국내 시중은행 중 지점이 제일 많다’는 강점을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모 은행이 100여 개 지점 신설을 내세우며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실제로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104개 점포를 보유, ‘점포수 1000’을 일찌감치 넘긴 상태다. 올 들어 9월 14일까지 19개 점포만 늘렸다. 선두주자로서의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점포를 무작정 내는 것과 수익하고는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에 점포를 신설하느냐에 따라 수익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죠.”

국민은행은 연초 올해 안에 30개 정도의 점포를 신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같은 계획은 지금까지는 큰 변동 없이 진행되고 있다.

유 팀장은 “강남권 경쟁이 치열하다고 해도 여전히 새로 점포를 낼 여지는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강남의 재건축 단지의 경우 점포를 신설해도 수익을 거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신도시의 경우 당장은 수익을 거두기 힘들지만 우리 은행이 없어 고객들이 불편을 겪는다면 지점 신설을 검토합니다. 은행이라고 해서 돈만 따지는 게 아니라는 얘기죠. 고객과의 불편 없는 커뮤니케이션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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