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월」로 접어든 한소 관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소관계는 정치ㆍ경제적 여건이 성숙되고 있으나 북한이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소반관영 노보스티통신과 로이터통신이 각각 분석했다. 로이터통신은 모스크바발 기사에서 한소수교 분위기가 북한의 존재에도 불구,소련내에서 급진전,성숙단계에 있다고 낙관적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노보스티의 정치해설가 L 믈레친은 중앙일보 특별기고에서 대북한 군사적 이해로 인해 소련의 대한관계에서 북한은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소련의 세계전략에도 북한은 방해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두 기사의 전문이다.
◎영국 로이터통신의 시각/수교논의 진전… 분위기 “성숙”/시기만 미룰뿐 경협ㆍ문화교류는 확대
소련과 한국의 밀월관계가 만개돼 나감에 따라 북한은 소련으로 부터 버림받은 것으로 느끼고 있다.
한소간의 교역은 증가하고 있으며 상호 여권발급 업무도 개시했다.
지난 83년 소련전투기들이 소영공을 침범한 한국의 보잉747 여객기를 격추시켜 타고 있던 2백69명이 몰사했었다. 그러나 지난달 소련의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사와 한국의 대한항공은 이 사건을 과거속에 묻어버리고 모스크바∼서울간 정기항로를 개설했다.
소련은 지난 1945년 스탈린이 이끌던 당시 소련정부가 탄생시킨 북한정권을 의식,한국과의 정식외교관계 수립을 미루고 있을 뿐이다.
서울은 지난 수년동안 미국의 북한승인과 함께 소련의 한국승인을 추진해 왔다.
지난달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온 김영삼 민자당 최고위원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한국과의 전면적인 국교수립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나 크렘린 당국은 북한의 김일성 전제정권의 분노를 사지 않으려 여전히 조심스러운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는듯 하다. 그럼에도 소련은 이제 과거에 비해서는 훨씬 거리낌없이 자기의 솔직한 생각들을 밝힐 수 있게 됐다.
소련 외무부의 그레미츠키흐 대변인은 지난 6일 기자들에게 『소련이 한국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점을 북한도 이해하고 있다』면서 『외교관계 수립 문제는 현시점에서 한국과 소련 어느쪽에도 우선과제가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양국이 실질적인 관계를 증진시켜 나갈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져 있다』면서 양국이 비자발급 업무를 시작한 것이 좋은 사례라고 지적하고 『이는 매우 좋은 출발점이며 앞으로도 계속돼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은 고르바초프의 변화의 바람에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
북한의 당기관지인 로동신문은 지난6일 『소련이 기본원칙을 위반하면서 한국을 승인함으로써 스스로 두개의 한국정책에 빠져들 것으로는 정상적인 상황하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사설을 통해 주장했다.
여하튼 모스크바와 서울의 유대는 공식관계가 없는데도 지장을 받지 않고 강화되고 있다. 작년의 교역액은 6억달러로 88년의 두배가 넘었다. 올해는 1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소련측에서 볼때 더 중요한 것은 양국간 교역이 소련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역뿐 아니라 문화 및 과학분야의 교류도 증진되고 있다. 한국의 민속무용단이 곧 모스크바에서 공연할 예정임을 선전하는 포스터가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 붙어 있다.
한반도에 대한 소련언론의 시각도 종전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소련의 라디오와 TV,그리고 보다 공식적인 간행물들은 북한과의 형제애적인 사회주의적 관계를 여전히 강조하고 있으나 독자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신문들은 자유롭게 북한을 비판하고 있다.
주간지인 아르쿠멘티 이 파크티(논쟁과 사실)는 지난주 『북한은 김일성의 기념관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론초프는 『남ㆍ북한 문제와 관련,소련안의 여론이 바뀌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흑백논리나 적(공산주의)과 백(반공주의)의 관점에서 남ㆍ북한 문제를 바라봤으나 이제는 훨씬 다양한 견해를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소 노보스티통신(본사특약) 시각/북한의식… 소 국교수립 주저/군사적이해ㆍ「신사고」와 어긋나 고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한소간의 관계개선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갖가지 추측이 무성하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이 실제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추측들이다.
한소 두나라가 언제쯤 정식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지는 관심사다.
현재 한국은 몽고를 포함한 동구의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반면 소련은 오히려 대한수교에 주저하는 기색이다.
소련에서는 현재 이상스레 보일 정도로 대한 관계개선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한국은 소련과의 관계정상화 및 동구와의 유대강화를 통해 사회주의 국가들과 보다 폭넓은 경제교류를 모색하고 있다.
한때 일본과 소련이 경제적으로 밀착되는 듯 보였으나 양국간 북방4개도서 영토분규로 인해 소일관계는 다소 소원해졌고 그 자리를 메울 최적격자로 한국이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소련이 동북아 국가들과의 관계개선 없이 이 지역의 긴장완화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아­태지역내의 긴장완화가 소련의 국익에 긴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한반도가 극동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요충지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바로 이같은 전략적 중요 지역에서 특정국가만을 배제한채 소련주도의 데탕트를 추구해 나가기는 어렵다는 것이 소련의 고민거리다.
이러한 소련의 고민을 한층 표면화 시켜줄 계기가 된 것이 김영삼 한국민자당 최고위원의 1주일에 걸친 소련 방문이다.
김최고위원이 한국집권당 공동대표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한 것은 소련 지도자들이 한국과의 접촉에 적극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최고위원이 소공산당 정치국원이자 고르바초프의 측근인 야코블레프와 빈번한 회동을 가진 것 역시 소련의 이같은 대한접근 의지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한소 양국간에 외교관계가 수립될 수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소수교 시기와 현재로서 외교관계 수립이 불가능 하다면 그 장애요인이 무엇인가는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소련과 북한과의 관계가 주된 이유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평양측은 최근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이 다투어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불만을 표시해 왔다.
그러나 동구국가들이 이같은 북한측의 반발을 무시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들 동구국가들이 북한과는 별다른 경제적 이해관계를 맺고있지 않기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소련의 입장은 다른 동구국가들과는 다르다.
북한을 비롯,베트남ㆍ몽고 등은 소련에 있어 극동지역의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 국가들이다.
이는 즉 소련이 날로 강화하고 있는 신정치사고가 열강으로서의 소련의 세계적 정치 이해와 상충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