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저성장 벗어나" 자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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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서 벗어나 정상 궤도로 진입한 해'. 재정경제부가 스스로 매긴 지난해 경제성적표다.

재경부는 17일 '2005년 경제백서'를 통해 지난해 한국 경제가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내수가 회복되고 수출 호조가 지속돼 성장의 내용은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경제백서 발간사에서 "(이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무리한 경기부양 없이 원칙에 입각해 경제를 운용한 결과로 자생력 있는 경기회복 기반이 마련된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경제백서에는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제 지표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4%는 2004년의 4.7%를 밑돈다.

또 국내 경제가 물가상승 등 부작용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 4.5~5%에도 미달하는 수준이다. 특히 경제규모가 4% 성장했음에도 국민이 실제로 손에 쥐는 실질소득을 나타내는 국민총소득은 0.5% 증가에 그쳤다. 지난해 국민의 실질적 소득 증가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에 그쳤다. 정부는 경제성장률이 1분기 2.7%에서 4분기 5.3%로 높아진 것을 들어 저성장에서 정상 궤도로 개선됐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실제 체감경기는 이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노무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도 부진했다. 취업자 증가 규모가 연간 30만 명에 그쳐 일자리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청년실업률은 김대중 정부 후반보다 더 나빠졌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인 2001년(7.9%)과 2002년(7%) 7%대였던 청년실업률은 현 정부 들어 줄곧 8%를 넘고 있다. 전체 실업률도 2002년 3.3%에서 지난해 3.7%로 높아져 고용 사정이 전반적으로 개선되지 않은 상황이다.

재경부는 주가가 크게 올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는 2조4000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했고, 외국인 직접투자도 2003년 29% 감소에 이어 지난해에도 9.6% 줄어드는 등 외자 유치 실적도 부진했다. 주가 상승만으로 경제가 잘 굴러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 정부가 분배를 강조하고 있지만 빈부 격차는 되레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빈부 격차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와 소득 5분위배율이 모두 나빠졌고, 소득 계층별로 보면 중산층이 감소하고 저소득층은 증가했다.

이에 대해 한양대 이상빈 교수는 "경제성장 없이 분배가 성공할 수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경제논리가 경제백서를 통해 확인된 만큼 정부는 기업의 투자 활성화와 소비 진작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권 부총리는 내년 경제에 대해 낙관적 견해를 제시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총회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권 부총리는 16일 "건설투자 부진 등으로 내년 성장률은 올해보다 둔화하겠지만 유가가 안정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체감경기와 소비는 올해보다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체감경기가 나빴던 지난해엔 하반기 경제성장률을 내세우며 '정상 궤도 진입'이라고 평가했던 권 부총리가 성장률이 나빠질 내년에 대해선 체감경기가 개선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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