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재벌회의 내용도 밝혀라”/“이견팽팽”양국 경제구조 조정회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국 「대점법」폐지등 2백항 요구/일본 미도 과소비 억제ㆍ저축해야/감정노출…통상마찰 넘어 「경제냉전」 시대로
…□ 2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과 일본정부간의 소위 경제구조조정 회담은 근래 양국간에 빚어져온 「경제적 냉전」의 완화여부를 가름하는 주요 계기로 평가되고 있다. 부시미대통령은 작년 5월 미통상법 슈퍼301조에 의해 일본등 3개국을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하면서 특히 일본과의 무역불균형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언명했다. 이에 따라 양국은 작년 9월 동경회담을 시발로 구조조정회담(SII)을 벌여온 이래 이번이 네번째 협상이다.
작년만해도 4백90억달러,지난10년간 4천억달러의 대일무역적자를 기록해온 미국은 대일적자문제는 더이상 개별현안들에 대한 그때그때의 협상으로는 해결될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내놓은 대일압력이 SII협상이었다.
이 협상의 목표는 첫째 일 시장개방,둘째 일무역흑자축소,셋째 미재정적자 개선,넷째 미산업경쟁력제고등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진행돼온 협상은 양측의 정치적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들이 되풀이돼온 느낌이 없지않았다.
미국은 일본이 개선해야할 구조적 무역장애 사항으로 2백40개 항목을 제시했다.
세제ㆍ금융ㆍ유통등 일본경제 전반부분에 도사리고 있는 반경쟁적 구조및 관행을 망라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장애요소가 제거되지 않는한 일본의 외형적 시장개방조치는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그중에는 일정부 공공투자를 현재 국민총생산의 6%에서 10%로 증가시키라는 주장에서부터 일재벌간부들의 월례회의 내용이 공개되어야 한다는 요구까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그들의 내정및 민간부분에 대해서까지 압력을 가하는 미태도에 대해 공개적으로는 맞서지 않았지만 감정이 매우 상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일본외무성은 지난주 미국도 재정및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할 사항들이 많다고 지적,그 구체안을 일본언론에 흘리기에 이르렀다.
당초부터 일본은 저축증대등 재정적자 삭감을 위한 미측 노력을 촉구해 왔었다.
그러나 이번에 일본은 미경제개선 세부제안으로 대형승용차를 줄이고,유류세를 인상하고,자동차할부판매 이자율을 높이고 크레딧카드 발행을 줄이는등 미국사람들의 과잉소비억제 대안들을 제시했다. 이밖에도 일본은 미국에 대해 경영대학원의 교과과정을 기업경영에 중점을 두어 개편하고 일본어및 일본업계관행을 교육시킬것등도 충고했다.
미일간의 통상마찰이 이같은 감정노출의 계기까지 빚어가면서 악화되는 동안 양국간 불신은 점점 깊어가는 느낌이다. 미국의 경우 소련ㆍ동구변화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사라져가고 있는 요즈음 일본에 대한 반감은 적개심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이제 양국통상문제는 경제관료간의 문제로 머물러 있지 않다는게 미국의 분위기다.
민주당이 지배하는 의회는 경제적 내셔널리즘과 보호무역주의 분위기가 날로 강화되고 있다. 상원무역소위위원장인 맥스보커스의원(몬태나주)은 경제구조조정협상이 실패하면 슈퍼301조에 의한 대일보복을 요구하는 법안을 정식 제출했다.
행정부의 경제장관들도 기회있을때마다 대일강경발언에 나서고 있어 미국의 대소이념냉전이 대일 「경제냉전」으로 대체되고 있는 감 마저 든다.
이번 협상에서 가장 어렵고 상징적인 의미가 걸려있는 대목은 일본의 대규모 소매점포법(대점법) 폐지문제다. 미측은 일본이 소규모 영세소매상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백화점등 대규모 소매상의 신설을 심한 경우 최대 10년간을 지연시키고 있다면서 이법의 폐지를 요구해 왔다.
일본의 여론도 미측 요구를 전면 수용하지는 못한다하더라도 최대한의 성의는 이번 회담에서 보여야한다는 견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양측 협상대표는 이달중 협상보고서를 작성한다는 일정을 짜놓고 있고 이 보고서 내용의 방향에 따라 미의회등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질것으로 믿고 있어 구체적 회담결과를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가이후일본총리의 국내 정치적 여건이다. 그도 대점법폐지는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민당내 반대세력은 그의 축출 구실을 찾고있는 중인데다가 소매상이 자민당의 전통적 지지세력인 점등 때문에 가이후총리가 아직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틀간의 예정으로 회담이 시작된 2일 마쓰나가 전 주미대사를 특사로 워싱턴에 급파했다. 부시대통령ㆍ베이커국무장관등과의 면담일정을 마련해 놓고있는 그는 대점법의 폐쇄방침등 미요구 수용안을 들고온것으로 알려졌다.【워싱턴=한남규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