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8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 대립/공산당서 “박헌영 밀어내기”/여운형에 신당맡길 움직임… 파벌알력 심각
서울에 도착하여 해방일보 편집국 아지트로 가기전에 우선 중학동에 있는 문우인서관으로 갔다. 문우인서관은 진주의 부호 정종근이란 사람이 경영하는 출판사로 진주근처 출신 공산주의자들의 집합소 같은 곳이었다.
거기 가니 마침 이우적은 없고 강병도가 모시옷을 입고 부채질을 하며 앉아 있었다. 그는 나보다 열살위이며 과거 우리형의 친구였다. 강병도와 이현상은 전에 중앙고보에 같이 다녔고 우리형과 주영하가 보성고보에 같이 다녔다.
강병도는 나를 보더니 잘 만났다는 듯이 옆방으로 데리고 가 『박동무 잘 만났소. 결정적인 때는 이제 왔소. 박헌영의 종파를 타도할 때가 왔소』하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는 『박헌영동무가 중앙위원장인데 당중앙위원장에게 반대하는 동무들이 종파지 어찌 박헌영동지가 종파란 말이오』하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는 『국제공산주의의 중앙은 소련이며 모스크바란 말이요. 조선공산주의 중앙은 서울이 아니고 평양이오.
평양의 박창옥동지도 「모스크바에서 오는 지령을 서울을 통해 다시 평양에서 받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며 지령은 모스크바∼평양∼서울로 하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소. 동무는 아직 젊어서 국제공산주의를 잘 모르고 있소』라며 강압적 태도를 취했다. 『예! 그렇습니다. 저는 국제공산주의를 잘 모릅니다. 저는 코민테른이 조선공산주의 운동을 버렸다고 생각해요. 코민테른은 현지의 실정을 배우려 하지 않고 되지도 않은 명령만 하지 않았소?』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는 해방일보사 편집회의나 학습회에서도 자기의 주관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의 팔을 붙들고 『박동무! 나는 동무를 친동생과 같이 생각하고 있소.
이번에는 우리가 반드시 이기오. 평양과 우리는 3당합당의 최고수뇌부를 여운형으로 하고 박헌영과 백남운을 부위원장으로 하기로 결정했소. 반드시 그렇게 될거요. 이것은 국제노선이오』하며 나를 달래는 것이었다.
그는 나를 친구의 동생이라고 아직 아이처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할수 없이 좋은 말로 『그렇다면 우리 당은 어떻게 됩니까. 여운형이 우리당의 당수가 된단 말입니까』고 물었다.
『그렇소. 여운형은 합당되는 신당의 당수가 될거요. 그리되면 해방일보 편제도 많이 달라질 것이오. 권오직과 조두원은 북으로 달아난것 같소.
동무도 편집위원이 되도록 내가 추천하겠소』하며 미군정에서 권오직에게 체포령을 내린 것을 좋은 기회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당은 탄압을 당하고 있는데 당내 종파분자들은 여운형·백남운과 동맹하여 당의 영도권을 탈취하려는 것이 확실했다. 나는 강병도와 더이상 이야기하기가 싫어 해방일보 편집아지트로 갔다. 거기에는 정진섭과 김장한 두사람만 있고 정태식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김장한은 구한말 친일과 반일을 오갔던 김윤식의 손자뻘되는 사람이었다.
또 그는 이승엽의 직계인 안영달의 처남이었다. 그는 나와 이우적ㆍ강병도등 영남사람들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자기의 매부 안영달은 경남 밀양사람인데 그랬다.
그는 나의 얼굴을 보자 상을 찌푸리며 『동무도 잘 알고 있겠지요. 강진ㆍ이정윤ㆍ김철수ㆍ문갑송ㆍ김근ㆍ서중석등 6명이 합당문제 일체를 자기들에게 맡기고 조속히 전당대회를 열어 박헌영선생을 물러가라 하지 않았소』하며 나에게 증오감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들 6명중에는 경상도 사람은 한사람도 없는데 그는 나를 이우적ㆍ강병도패라고 나까지 싸잡아 공격하는 태도였다. 나는 입장이 참으로 곤란했다.
나를 이해해주는 박헌영ㆍ권오직ㆍ조두원은 지하로 피신해 버려 도저히 만날 수 없고 해방일보의 책임을 맡은 정태식은 자기의 일가인 정진섭과 이승엽계인 김장한을 신임했고 이우적계인 나를 불신하는 것 같았다.
그 이튿날 정태식을 만났는데 그저 다른 이야기만 할 뿐 당내문제에 관해서는 나에게 한마디도 비치지 않았다. 역시 그는 나를 이우적·강병도패로 보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나는 파벌을 제일 싫어했다. 자기의 경력을 완전히 속이고 김일성 장군으로 날조ㆍ둔갑한 김성주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존재로 경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우적ㆍ강병도까지 김일성을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과 이우적ㆍ강병도를 싫어하는 정태식ㆍ정진섭ㆍ김장한등 해방일보세포를 지키는 사람들은 나를 이우적패로 알고 내가 무슨 정탐이라도 하려고 자기들에게 접근해 오는 것처럼 경계하고 있었다.PN JAD
PD 19900402
PG 05
PQ 03
CP YS
SA P
CK 03
CS A01
BL 1462
GI 유재식
TI 동독판 「5공청산」… “슈타지 파문”
TX ◎“새 의원등 40여명 비밀경찰 첩자”공방/처벌요구 시위확산… 통독길목에 암초
동독의 전비밀경찰조직인 슈타지(Stasi)파문이 날로 확산되면서 동독정계에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고 있다.
「슈타지파문」이란 지난 3·18총선에서 당선된 4백명의 동독인민의회 의원중 주요정당의 지도자들을 포함해 약40여명이 비밀경찰의 첩자였다는 주장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공방전이다.
이 문제로 동독의 주요도시에서는 최근 들어 연일 이에 대한 진상규명과 범법사실이 드러난 의원들의 당선을 무효화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데모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40여년간 스탈린식 공산독재의 질곡을 벗어나 이제 막 민주·통일국가로 나아가려는 동독이 슈타지라는 뜻밖의 「암초」에 부딪쳐정부 출범도 하기전부터 비틀거리고 있다.
「동독판 5공청산」 또는 「동독판 뉘른베르크전범재판」 문제로 동독정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슈타지파문이 처음 터진 것은 총선유세가 한창이던 지난달 12일 서독의 슈피겔지등 언론들이 3·18총선에서 승리한 독일연합의 한 정파였던 「민주주의의 출발」 당수인 슈누르변호사(45)가 슈타지의 끄나불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부터다.
슈누르는 처음에 이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며 매터도라고 주장했으나 슈타지의 일지에서 그의 이름이 발견되자 3월14일 이 사실을 고백하고 당수직에서 사임,슈타지파문의 최초 희생자가 됐다.
이어 로타르 드 마이지에 기민당 당수와 키르히너 사무총장,그리고 이브라임 뵈메 사민당당수등에까지 혐의가 확대됐고 급기야는 의원당선자의 10%인 40여명이 슈타지와 관련돼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와 관련,뵈메 사민당 당수는 최근 자신의 결백이 입증될 때까지 당수직을 잠정사임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사태가 계속 확대되자 동독의 12개 정당지도자들은 지난달 30일 의회내에 「동독판 반민특위」격인 슈타지관련자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물론 지난달 31일 슈타지관련서류 공개조사에서 드 마이지에와 뵈메당수는 물론 의원당선자중 슈타지관련자가 한명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이 조사과정에서 시민대표들이 배제돼 국민들의 의혹은 계속되고 있다.
동독의 정치지도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슈타지 파문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의회내에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키로 합의한 것도 이의 해결 또는 극복이 없이는 민주화는 물론,당장 코앞의 현실로 다가올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할 수 없다는 공감대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이 문제를 놓고 시간을 질질끌 여유가 없는 것도 동독정계의 현실이다. 민주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지금부터 해야할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동독의 슈타지 파문은 지금까지의 강도에 비해 「찻잔속의 폭풍」으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속죄양으로 제2의 슈누르를 몇명 만들어 이 문제를 종결할 가능성도 있다.
국민들은 부정한 의원을 원치 않고 있지만 동시에 이 문제로 동독의 민주주의 자체가 좌절하는 것은 더욱 바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유재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