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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즐겨읽기] 애들이 더 잘 알아, 세상의 단맛 쓴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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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해 일본의 대표적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을 받은 슈카와 미나토의 단편집 '꽃밥'도 그런 이야기들의 묶음이다. 여섯 편의 화자로 등장하는 아이들은 무심한 눈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들의 무심함은 어른보다 훨씬 더 리얼하게 삶의 진실을 전달한다.

나오키상 수상작이자 표제작인 '꽃밥'은 전생을 기억하는 일곱 살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아이는 자신이 낯선 남자에게 등을 칼로 찔려 죽은 엘리베이터 걸이었다고 말한다. 아이는 오빠와 함께 전생의 아버지 집을 찾는다. 아버지는 딸이 죽은 그 시각 멀쩡히 음식을 삼키고 있었다는 죄책감으로 평생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해골처럼 빼빼 마른, 죽은 사람보다 더 못해보이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속죄였던 것.

여자아이는 어린 시절 자신이 즐겨 만들던 꽃으로 만든 도시락 밥을 아버지에게 보낸다. 아버지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철쭉꽃을 매실장아찌처럼 한가운데 콕 박은" 꽃밥을 먹는다. 물론 시늉만으로. 화자인 소년은 "오빠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달픈 직업"이라고 툴툴대지만, 그가 전하는 꽃밥 먹는 아버지의 정경은 마음 편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요정 생물'도 뒷맛이 씁스레하다. 부모가 바빠 늘 외로운 소녀에게 어느 날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기묘한 느낌을 받는 이상한 생물이 찾아온다. 그후 가족을 위해 희생하던 엄마가 소녀가 남몰래 연정을 품고 있던 인부와 도망가버린다. 소녀는 요정 생물이 불행을 가져왔다고 여겨 칼로 요정 생물을 찔러 죽인다. 소녀는 요정 생물이 죽으면서 내뿜은 이상한 액체가 남자의 정액이라는 사실을 훗날에서야 알게 된다. 이 역시 어린 시절 부모 몰래 동물 키우기의 내밀한 추억을 응용한 듯 하면서도 사실은 그 추억에 얽힌 인간의 복잡한 욕망의 세계를 더듬는다.

이밖에 죽어가는 사람의 고통을 줄이고 편안한 임종을 맞게 해주는 무당의 속사정('오쿠린바'), 가난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 당한 남자아이와 묘지에서 만난 여자의 교제('얼음 나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아이가 병으로 죽은 뒤 도깨비가 돼 친구들을 찾아가는 사연('도까비의 밤'), 이승에 대한 미련 때문에 화장터에서 소동을 일으킨 남자의 영혼('참 묘한 세상')등 제각기 나름대로의 빛깔과 맛을 지닌 이야기들이 담겼다. 수상작은 맨 앞에 실렸지만 뒤쪽으로 갈수록 이야기의 점도(粘度)가 높아진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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