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관 18명 걱정만 하고 끝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13일 오전 9시 서울 세종로 정부 종합청사.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관계부처 장관들과 함께 전세난 대책 마련을 위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하고 있었다.

권 부총리는 "전세자금을 확대하고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전세시장 동향을 면밀히 점검해 달라"고 말했다. 김용덕 건교부 차관은 "서울과 수도권의 전세 가격이 불안한 것은 계절적 요인 때문으로 10월 들어선 안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일부 장관이 전세가격 상승 조짐을 걱정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결국 전세시장 대책은 건교부가 올린 안건 그대로 통과됐다.

이날 참석자는 18명. 주무부처인 건교부에서는 추병직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그린벨트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기 때문에 김 차관이 대신 나왔다. 농림부(박홍수).산업자원부(정세균).환경부(이치범).노동부(이상수).해양수산부(김성진)에선 장관이 직접 참석했지만 교육부.행자부.문화부.정보통신부.여성가족부.기획예산처.공정거래위원회.국정홍보처.중소기업청.금융감독위원회에서도 차관이나 부위원장이 대리로 참석했다. 나머지 한 명의 참석자는 유홍준 문화재청장.

이렇게 경제부처 최고인사 18명이 모인 회의에서 결정된 전세시장 대책은 종전 대책의 재탕 삼탕에 그쳤다. 전세자금을 1조6000억원에서 2조원으로 늘리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부당 임대차 신고센터의 운영실태를 점검하며 계약 기간 중 과도한 가격인상(법정 인상률 연간 5%) 요구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재경부 관계자들도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털어놓을 만큼 전세시장 불안 때마다 되풀이된 미봉책들이었다.

이날 정부가 분석한 전셋값 상승의 원인도 시장의 시각과는 달랐다. 정부는 최근 전세가격을 끌어올린 주범은 이사철과 결혼 등에 따른 계절적 요인 때문이며 2004년 하락했던 전셋값이 현실화하고 있는 점, 앞으로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란 예상 때문에 주택 구입 수요가 전세 수요로 바뀐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요 측면에선 올해가 전세계약 만료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짝수 해라는 점이 작용했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지난해 8.31 대책 등 그동안 부동산 정책이 공급을 늘리지 않고 규제만 일삼은 데 따른 후유증도 큰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급이 줄어드는 바람에 전세 수요가 주택 공급보다 많다는 점을 첫 번째 원인으로 꼽는다. 서울의 신규 주택 공급물량이 2004년 이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와 종합부동산세 부과 등으로 늘어나는 세금 때문에 전셋값을 올리거나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곳이 많아진 것도 전세난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저금리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2002년 이후 금리가 종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자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이 많아진 것이다.

실제로 전체 가구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28.2%에서 2005년 22.4%로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월세는 14.8%에서 19%로 늘었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 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지금의 전셋값 상승은 과도한 규제에 따른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되고 있는 과정"이라며 "투기와 무관한 규제를 푸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김동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