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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기강 이대론 안된다/잦은 탈선 사례가 주는 충격(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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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권력의 정당성은 그것이 공익을 추구하고 공정하게 행사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민주법치국가에서 그것은 또 실정법규에 따른 업무집행을 요구한다. 이같은 관점에서 최근 지상에 보도된 몇건의 사례는 「공권력의 위기」로 간주되어 마땅할 것 같다.
음성경찰서에서는 한 경찰관이 4년동안 사건기록 60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없애버린 기막힌 사건이 있었다.
또 국보급 미인도를 일본에 밀반출하려던 사건을 수사하면서 서울 강동서 경찰관들이 돈을 받고 조직적으로 범인을 조작,범행을 은폐하려다 검찰수사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서울동부지청은 그 수사과정에서 『참고인을 폭행했다』는 물의를 빚어 자체조사를 펴고 있다.
그런가 하면 1년동안 수백억원대의 소매치기 범행을 해온 8개 조직과 그들로부터 수십억원을 갈취한 경찰 「정보원」들이 검찰에 검거됐고 울산에선 경찰서의 대용감방에서 히로뽕까지 몰래 들여다 맞았다는 폭로로 조사가 진행중이다.
또 경남 양산에서는 부군수를 비롯한 공무원들이 군유지를 싸게 불하받아 거액의 이득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 말썽이 되고 있다.
경찰ㆍ검찰ㆍ지방행정관청 모두에서 공권력의 정당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작태가 잇따라 폭로된 셈이다. 과연 이것을 해당 관서와 당사자에 국한된 돌출 사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근래 공직사회 전반에 만연된 사명감 상실,본분 망각 분위기와 행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된다.
그래서 심각한 우려와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경찰 수뇌부가 입버릇처럼 되풀이해온 민생치안확립 다짐에도 불구하고 왜 범죄가 갈수록 증가하고만 있는지,검찰이 사회정의 구현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왜 불신을 씻지 못하는지,일선 행정관서가 저마다 위민봉사의 구호를 내걸고 있는 데도 원성이 더 많이 쏟아지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같은 비리를 모든 행정조직과 공무원 전체의 행태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명백히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일시적ㆍ우발적인 탈선이 아니라 구조적ㆍ체질적이라는 점이다.
경찰ㆍ검찰ㆍ지방행정기관 할것없이 실제로 시민들과 접촉하는 공권력행사의 현장에서 이런 일련의 사건이 보여주는 비리와 탈선은 일상화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사건 조작ㆍ뇌물수수ㆍ허위보고ㆍ인권유린ㆍ직권을 이용한 축재 등은 너무도 자주 저질러지는 것일 뿐 아니라 근래 민주화 분위기를 타고 관기 해이현상으로 더욱 악화된 느낌이다.
우리는 민주화의 최우선 과제가 행정조직의 위민 제일주의 확립과 공무원사회의 기강정립에 있다고 본다. 아무리 거창하고 그럴듯한 국가정책의 목표나 방향이 제시되었다 해도 그것을 실제에서 집행하는 것은 결국 공무원들을 통해서다.
그 공권력행사가 탈법적으로 사리를 추구한다면 과연 어떻게 정당성을 주장하고 시민의 신뢰나 협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민생치안확립을 비롯한 정부의 공약이 실천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앞서 관기확립이 선결요건이라고 본다.
집권 중반을 넘기고 있는 6공정부는 공직사회의 기강이 무너진 근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그 바탕 위에서 대증요법이 아닌 국기의 확립이란 차원에서 관기를 회복하는 데 노력을 집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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