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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운영의 주체는 누군가/개정 사립학교법에 문제있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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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육과 관련된 시급하고도 당면한 현안들을 제쳐두고 개악의 소지를 담고 있는 「개정 사립학교법」을 의원입법형식으로 통과시킨 국회의 입법과정에 대해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정작 오랜 세월동안 누적되어온 교육계의 불만해소와 교원의 사회ㆍ경제적 지위향상을 목적으로 한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안」은 이미 지난해부터 국회에 제출되었지만 상임위의 심의조차 제대로 거치지 못한 채 다음 회기로 넘어가버렸다.
미진학 청소년의 직업ㆍ기술교육과 학교교육의 보완,독학자도 제도적 교육의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립추진중인 교육방송공사설립에 관한 법 또한 지난해부터 국회에 제출된 상태였지만 여지껏 단한번 토의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왔다.
어째서 이처럼 화급하고도 막중한 안건은 뒷전으로 미루면서 개악적 소지가 있고 학원내에 새로운 불씨로 타오를 예민한 문제를 공청회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슬그머니 입법화할 수 있느냐에 강한 불신을 자아내게 한다.
물론 개정된 사립학교법의 전부가 해악적 소지를 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학교회계의 예산과 결산에 대해 10인이상의 교직원으로 구성되는 예산ㆍ결산자문위원회를 설치한다거나 대학에만 두었던 교원인사위원회를 중ㆍ고교에도 신설하며 사립학교 교원에게도 명예퇴직제도를 도입하는등의 진일보된 내용도 담겨있다.
그러나 등록금인상 저지투쟁과 총장선출을 둘러싼 학내분규가 지난 2년동안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고 「한 대학 두 총장」이라는 해괴한 현상이 학내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왜 굳이 대학의 자율성보다는 재단의 대학운영권을 강화하는 쪽으로,교수회나 교수협의회보다는 재단이 사회에 힘을 몰아주는 쪽으로 기울어졌느냐에 관심이 쏠리게 된다.
애당초 등록금인상 저지투쟁이나 총장선출을 둘러싼 학내분규가 일어날 수 있는 배경에는 사학재단의 재단전입금이 대부분 10%미만이고 학교운영의 대부분을 대학생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학교운영권은 사회재단에 있다는 반발심리가 깔려있다. 학교운영에 대한 기여도는 없으면서도 족벌경영에 의한 전횡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수천억원의 자산을 학교설립에 투자한 선의의 설립자 입장에서 본다면,투자의 의무는 강요받으면서도 법인체 대표로서의 권리사항은 아무 것도 행사할 수 없다는 허탈한 심정에 빠지게 된다.
결국 학교운영의 주체권을 둘러싼 지난 2년여의 학내분규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공전하는 상태에서 국회가 재단쪽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사실은 교수회와 학생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미 우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주장해왔듯이 대학운영의 주체는 재단과 교수회간의 조화와 합의에 따른 자율적 운영이어야 한다.
법적으로 보장된 이사회의 권한만을 강조한 나머지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도 없고,대학의 자율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대학사회가 무질서와 혼돈의 늪에 빠지는 상황 또한 여론이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정 사립학교법은 사학의 운영권과 교학권의 형평을 유지할 수 있는 테두리안에서 단기적으로는 시행령으로 그 형평을 유지토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공청회를 통해 악용의 소지를 척결하는 방향으로 다시 개정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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