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길 앞당긴 동독 선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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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독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난제중의 난제로 꼽혀온 통독의 길을 열었다. 유럽 전체의 안보의 틀을 바꾸어 놓을 가능성 때문에 소련을 포함한 2차대전 전승국들의 견제의 벽과 동ㆍ서독 내부의 기존 정치세력간 갈등요소를 민의가 밀어 붙인 것이다. 그러나 동독총선 이후 통독의 앞길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번 선거 결과로 과반수 가까운 의석을 차지한 독일연합은 의회에 진출한 6개 정파중 연합정부에 참여할 파트너를 찾아 내각을 구성하는 대로 통일방법과 조건에 대해 서독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벌이게 된다.
집권당이나 체제의 선택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기정화된 시장경제의 도입과 통일을 얼마나 빨리,어떤 방법으로 실현하는가를 묻는 국민투표 성격을 띠었다는 데 이번 선거의 특징이 있다.
그런 면에서 동독 국민들은 대다수가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겠다는 욕구가 강렬했음을 선거결과는 보여주고 있다.
기왕의 통독방법 논의는 동독선거후 서독의 기본법 23조에 따라 새로 구성되는 동독의회가 서독연방에 편입을 결정해 단순한 합병형식을 취하자는 독일연합의 주장과 기본법 146조를 적용해 동ㆍ서독의회가 동등한 자격으로 제헌의회를 구성,새 헌법을 만들어 통일하자는 사민당의 주장 등 두갈래로 진행돼 왔다.
선거결과는 단순 합병에 의한 조기통일을 주장한 독일연합이 제1당으로 부상,통일협상을 주도하게 됐으나 일단 콜 서독총리가 기대했던 것처럼 금년내 통일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동독 사민당이 연정참여 거부의사를 밝힘으로써 통일방식을 규정하는 개헌에 필요한 의회내 3분의2 의석확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갈래 통일방법중 어떤 것을 택하든 그에 앞서 양독의 경제통합을 위한 단일통화문제가 논의,해결돼야 한다. 이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독일연합의 주장이 관철될 경우 빠르면 금년 6월까지 매듭지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서독 경제체제에 동독이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동독시민들에게는 지난 40년간 그들의 몸에 배어온 모든 인습과 사회및 행동규범의 포기와 가치척도의 상실을 의미하고 그에 따르는 고통을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원리의 도입에 따라 경쟁력과 생산성이 뒤떨어지는 동독 산업구조의 축소나 도태에 따른 대량 실업의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고려해 서독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동ㆍ서독의 통일이 필연적인 가능성으로 처음 대두됐을때 양측 국민들의 내부 적응을 위해 준비작업에만 적어도 10년은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동독에서의 급속한 사태 발전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고 압박하고 있다.
이런 어려움에 덧붙여 통일에 동의권을 가진 전승 4개국과의 협상,그 뒤를 이을 35개 유럽안보협정 서명당사국의 협상등이 도사리고 있다.
서독정부는 통일된 독일이 NATO회원국으로 계속 존속하기를 주장하고 있으나 소련은 중립화를 요구,문제해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통일이 두 당사자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전후 유럽질서가 이념대립,군사대결체제에서 탈피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 평화구도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우리는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동ㆍ서독 체제가 외형상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이념전으로 대립,경쟁해온 분단국이었다는 데서 앞으로 통일작업에 따르는 과정과 그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참고가 될 것이므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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