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빚 얻어 복지 지출 늘려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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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당정협의에 내놓은 내년 예산안은 역시 분배에 초점이 맞춰졌다. 복지 예산을 올해에 이어 두 자릿수 증가율로 늘려 소득과 교육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예산과 기금을 합친 내년도 정부 지출액은 239조원으로 올해보다 6~7%가량 늘어난다. 반면에 복지 예산은 올해 56조원에서 내년에는 62조원 수준으로 10% 이상 늘려 잡았다. 경기가 가라앉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복지 예산만큼은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정부 스스로도 내년도 실질경제성장률을 4.6%로 낮춰 잡았다. 민간 예측기관들은 내년에 4%대 성장률의 달성도 어렵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만큼 내년 경제가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당연히 세입 여건이 악화될 게 뻔하다. 들어올 돈은 부족한데 돈 쓸 일을 더 벌이려면 적자예산을 짤 수밖에 없다.

정부는 내년에 약 9조원가량의 적자 국채를 발행해 부족한 세수를 메울 계획이라고 한다. 빚을 얻어서라도 복지 지출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재정 운영은 단기적으로 생색이 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복지 지출로 혜택받는 사람들이야 환영하겠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나랏빚으로 남는다.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두지 않고 빚으로 재정을 충당할 경우 당장은 국민 부담이 늘지 않지만, 결국은 후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꼴이다.

적자 재정이 구조적으로 고착되면 되돌리기도 어렵다. 한번 늘어난 복지 지출은 줄이기 어려운 반면, 세수는 경제 상황에 따라 증감이 엇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빚을 얻어 빚을 메우는 적자 재정의 악순환에 빠질 공산이 커진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일부 선진국의 경험은 재정의 건전성이 일단 무너지고 나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구나 경기가 악화되는 시점에 경기 회복이나 성장에 보탬이 되지 않는 복지 지출을 고집스럽게 늘리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앞으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예산구조의 전면 재조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