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김일성가계 업적으로 왜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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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에서는 매년 「평양시 보고회」라는 형식으로 3·1절 기념행사를 갖고 김일성가계의 항일투쟁업적을 부각시키는 한편 대미·대남한 비방의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
이 기념행사에서 북한고위관리가 행한 보고내용등을 종합해보면 3·1운동의 발발과정·민족대표성·평가 및 영향등에 있어 우리와 큰 시각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3· 1운동의 주동세력을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의 지도·육성을 받은 평양의 「애국청년학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부총리 정준기는 89년 기념행사 보고에서 『항쟁의 불길은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께서 몸소 키우신 애국적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을 선두로 한 10여만 평양인민들의 대중적 반일시위를 봉화로 하여 삽시간에 전국각지를 휩쓸었다』고 강조했다.
일제의 폭정에 따라 반일감정이 심화되어가고 있던 시점에서 1919년2월8일 동경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이 기폭제가 됐다는 데까지는 우리측 시각과 일치한다.
그러나 그후 전개과정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3·1운동은 당시 서울의 파고다공원에서 손병희선생을 비롯한 33인의 민족지도자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을 계기로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확산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은 3·1운동의 시발점을 서울이 아닌 평양으로, 33인의 역할을 김형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북한은 한걸음 더 나아가 33인 민족지도자들을 격렬히 비난하고 있다.
북한은 이들을 친미사대주의자, 무저항· 비폭력주의자, 타협적인 독립청원운동 및 위임통치운동을 벌인 기회주의자등으로 매도, 33인 어느 누구에게도 포상을 하지 않았다.
물론 33인중 일부는 3·1운동 후 「변절」한 인사도 있으나 이 같은 매도는 오직 김형직을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북한은 3· 1운동의 외적요인으로 7O년대초까지는 러시아 10월혁명을 인정했었다.
그러나 그후에는 이 점을 언급하고 있지 않는데 이는 김일성일가 중심의 역사기술방침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3· 1운동의 성과로 애국심고취, 민족적 각성, 세계 열강의 대한국관심 제고등을 드는 것은 남북이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 평가와 교훈의 측면에서는 매우 다르다.
북한은 3· 1운동이 「실패한 인민봉기」라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실패원인을 「탁월한 지도자의 결여」라고 규정하고 3·1운동후 지도자의 출현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인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받들어 김일성이 민족앞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83년 기념보고회에서 당시 조국전선 서기국장 여연구는『3·1인민봉기의 전과정에서 우리인민은 단순한 시위투쟁이나 폭동의 방법으로는 나라의 자주적 독립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뼈에 사무치게 알았다』 며 『자주성을 위한 혁명투쟁에서 승리하려면 탁월한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3· 1 인민봉기는 가르쳐 주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 같은 「김일성출현의 불가피성」에 그치지 않고「김정일등장」에도 3·1운동을 연결, 왜곡하고 있다.
북한은 3·1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김일성가계에 대를 이어 충성, 사회주의의 완전승리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는 것이다.
북한은 3· 1운동 실패의 또 다른 교훈으로 혁명역량의 미성숙을 들고 있다.
혁명적 노동자계급이 존재하지 않았고 농민도 혁명적으로 동원하는데 불충분했기 때문에 3·1운동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3· 1운동의 「의의」를 인용, 대미· 대남 비난을 계속해왔다.
3· 1운동이 발발한지 70여년이 흘렀지만 민족염원인 완전독립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전제 아래 이는 미제의 강점으로 남한이 식민지적 예속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3· 1운동의 뜻을 받들어 미제의 식민투쟁을 끝장내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팀 스피리트 훈련시기가 3· 1절을 끼고있기 때문에 한미양측이 팀 스피리트훈련을 실시한 후부터는 이를 3· 1절과 엉뚱하게 결부시켜 비난해왔다.
83년 로동신문은 『미제침략자들은 무모한 전쟁 소동을 그만두고 남조선에서 즉시 물러나야 한다』며 『북과 남의 모든 애국역량은 반미자주화의 기치밑에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 떨쳐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따라 금년도 3·1절에 북한이 어떤 자세로 나올지 주목된다.
북한은 3· 1절 행사를 5∼10년 주기로 격을 높여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와는 달리 국경일이나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지 않다.

<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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