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목마른 주민들 마을 도서관 만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5일 오후 대구시 지묘동 한들마을도서관. 주민 홍영아(36.여)씨가 책을 하나 빼든다. 제목은 '미술과의 첫 만남'. 유명 화가의 그림과 설명이 담긴 책이다. "아이들의 미술 공부를 도와주기 위해 책을 찾다가 여기에 들렀어요. 좋은 작품이 많이 실려 있고 해설도 잘 돼있네요." 홍씨는 다른 책 두 권을 더 골라 도서관을 나섰다. 이 도서관은 지난해 5월 주민들이 만들었다. 공산농협 서부지점 3층에 있는 열람실 60평 정도의 조그마한 도서관 가운데에는 탁자와 칸막이형 열람석 30개가 있다.

열람실 옆 옥상에는 작은 소나무와 꽃으로 단장된 20석의 소공원형 야외 열람석도 있다. 도서관 이용자가 갈수록 늘어나 지금은 마을 공동체에 없어서는 안 될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용하는 회원은 개관 때의 두 배가 넘는 1200여 명. 장서도 5200여 권에서 7500여 권으로 늘었다. 하루 평균 100여 명이 찾아 250여 권을 대출한다. 도서관 설립에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유정실(63.여) 관장이다.

대구시 지묘동 주민들이 지난해 5월 만든 '한들마을도서관'이 주민 자립형 도서관의 표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도서관은 매일 네 명씩 인근 아파트 주부들이 대출 업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정실 관장, 이명희.이영남.김경숙.윤미경.이세나.여동주.강해윤.김선희씨. 대구=조문규 기자

유 관장은 지난해 1월 마을에 서점이나 도서관이 없어 불편해 하는 주민들을 보고 도서관 건립을 결심했다. 이곳 주민이자 당시 지묘초등학교 교장이었던 그는 정년퇴직을 한 달여 앞두고 있었다. 유 관장이 평소 알고 지내던 학부모와 주민들에게 구상을 털어놓았다. 모두 "한번 해보자"며 흔쾌히 동의했다. 유 관장과 인근 아파트 주민 40명이 모여 마을도서관 건립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도서관 이름은 지묘동의 옛 명칭인 '한들'로 정했다. 팔공산 자락의 작은 마을이었던 지묘동은 10여 년 전 3700여 가구에 1만1300여 명이 사는 아파트촌으로 변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도서관은 6㎞, 도심 서점가는 10㎞ 남짓 떨어져 주민의 불편이 컸다.

추진위 위원들은 마을 곳곳에 플래카드를 내걸고 자신이 맡은 아파트를 돌며 도서관 설립 취지를 알리는 안내문을 돌렸다. 이들은 도서관 설립을 위해 회원 가입과 헌책 기증을 부탁했다. 초기 활동 비용 1000만원은 유 관장이 내놓았다. 이들의 뜻을 안 주민들이 컴퓨터.정수기를 기증하거나 10만~100만원의 성금을 내놓기 시작했다. 공산농협은 건물 3층을 무상으로 빌려줬다. 도서의 분류와 컴퓨터 입력작업은 사서 출신 주민 3명이 맡았다. 지난해 5월 25일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설립에 들어간 비용은 5000여만원이었다. 올 6월에는 대구시에 공공사설도서관 인가를 받아 정식 도서관이 됐다. 책 정리와 대출업무도 36명의 주민이 매일 4명씩 교대로 하고 있다.

도서관은 주민을 위한 문화행사도 열고 있다. 대표적인 행사는 '수요독서회'. 지정된 책을 읽은 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 도서관에 모여 토론을 하는 행사다. 시 낭송회와 음악회도 열린다. 주민이 어린이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책 읽는 법을 가르쳐 주는 '어린이 이야기 교실'에는 많은 초등생이 몰리고 있다.

유 관장은 "도서관은 주민의 열정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며 "지묘동을 '책 읽는 마을'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대구=홍권삼 기자<honggs@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