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관 규제 많고 재정난 심각(교육 이대로 둘 것인가:5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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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법인 재량권 적어 갈수록 위축/족벌체제ㆍ기부금 등 비리로 불신 자초도
올 새해 첫날 서울P대 재단이사장 최모씨(69)는 신정휴가를 떠났던 여느해와는 달리 자신이 평소 다니던 교회를 찾아 『90년은 조용한 한해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원했다.
국민 모두에게 80년대가 풍진노도의 세월이었다면 최씨에게 있어서도 그야말로 참고 견디기 힘든 고통의 세월이었다.
특히 87년 민주화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되는 학생들의 시위속에 재단이사장실은 걸핏하면 학생들의 농성장으로 변해버렸고 그 와중에 자신은 학생들의 등록금을 축내는 파렴치한 「부정교주」로 몰리고 말았다.
P대가 설립된 것은 20여년전. 그동안 해마다 누적되는 적자 재정속에 대학살림을 꾸리느라 안간힘을 다해왔지만 이같은 노력도 헛되이 최근들어 「부정교주」로 몰려 시달리다보니 점점 건학이념은 퇴색되고 후회만 깊어져 더이상 버텨나갈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때문에 『제발 학생들만이라도 좀 조용해주었으면…』하는 소박한 바람이 90년 첫날의 기원이 되고 만 것이다.
이같은 후회와 바람은 서울의 신흥명문인 D고 설립자이자 교장인 서모씨(53)도 마찬가지.
서교장은 교원노조가 태동하던 지난해 5월 노조교사와 대학생 제자들로부터 부정축재자로 몰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권위주의 서슬이 시퍼렇던 5공때의 시련도,노조교사들과의 갈등도 모두 참아낼 수 있었으나 내 손으로 길러낸 제자들이 교문앞에 몰려와 부정축재자로 매도할 때는 그동안 학교발전을 위해 쏟아온 정성과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서교장이나 최이사장등 일부 사학설립자들이 교육자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겪고 있는 이같은 갈등이나 고통은 오늘의 사학이 허덕이고 있는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속으로는 갈수록 골이 깊어가는 재정난에다 사립학교법등 온갖 규제의 틀에 꽁꽁 묶여 제몸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할 정도의 중증환자이면서도 국민들로부터는 오히려 온갖 부정과 비리의 온상으로 불신당하는 이중고속의 빈사상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절박한 분위기때문에 지난해 12월12일 사립학교교원 연금관리공단 강당에서 열린 한국사학법인연합회 89년 정기총회장은 여느 때와는 달리 침통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이날 참석한 사학설립자들은 사학정상화와 당국의 정책적 결단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로 했으며 일부에서는 『현 여건아래서 더이상 사학을 꾸려갈 묘안이 없으니 대학을 국가에 헌납하자』는 극단론까지 모아졌다는 후문이다.
사학설립자나 재단관계자들은 현재의 사립학교법은 사학인을 불신하는 위헌적 규제로 사학을 기동조차 못하게 묶어 놓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현행 사립학교법은 법인이사장ㆍ이사ㆍ감사 등 임원취임은 문교부의 승인을 받고(20조),이사장은 학교장을 겸직할 수 없도록(23조) 하는 한편 문교부가 임원의 취임승인을 취소(20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인사권은 물론 재정권ㆍ규칙제정권 등 학교법인의 권한을 축소제한만 해온 까닭에 학교경영의 책임주체인 법인이사회가 있으나 마나한 무력한 존재로 학교경영에서 소외되어 사학이 무주공산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립학교법은 63년 제정이후 지금까지 열네차례나 바뀌었지만 사학정상화나 활성화보다는 당시의 위정자나 문교당국의 편의에 따라 규제에만 치중,오히려 사학발전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칼자루는 문교부가 쥐고 법인이사회는 고유영역주권은 송두리째 짓밟힌 채 모든 책임만을 똘똘뭉쳐 뒤집어 쓰는 억울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는 한 사학관계자의 지적이다.
교육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지는 공공성과 민간육영재단으로서 독자적인 재량권을 갖는 자주성중 공공성만이 지나치게 강조된 결과 규제 일변도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와 사학이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당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은 그동안 사학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어느 정도는 일부 사학설립자들의 전비가 불러들인 「자업자득」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사학의 두 모습」-.
지난해 9월 이사장과 총장이 구속되기까지 한 서울 D대 입시부정사건이나 88년 전남ㆍ광주의 일부 사립고에서 터진 교사기부금사건등 사학의 잇따른 비리는 국민들에게는 빙산의 일각으로 비쳐져 사학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고 사학이 아직도 안으로 곪고 있다는 우려를 안겨주기도 한다.
최근까지도 SㆍJ대 등 일부 대학에서 학내 소요의 불씨가 됐던 족벌체제등 재단비리는 또다른 관의 규제를 불러들이는 원인이 된 것이다. 이 결과 해마다 악화되는 재정난과 함께 대부분의 사학설립자들이 의욕을 잃고 있다. 사학의 비중이 대학의 경우 74.6%에 이르고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에 비춰 큰 문제다.
홍성대씨(상산학원이사장)는 『일부 사학의 비리때문에 대다수 성실한 사학이 도매금으로 규제를 받아 위축되고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당해야 하는 현실은 진정한 사학발전을 위해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했다.<정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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