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사건도 “쉬쉬”(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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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번 강도사건의 범인들은 절대로 8일전 발생한 구로동 룸살롱 4명 집단피살사건과 동일범이 아닙니다. 첫째로 범인 2명중 1명의 머리가 수배명단에 나온 것보다 깁니다. 그리고….』
『범인들이 2인조고 체격이 비슷한데다 말씨가 같고 무엇보다 목격자들이 수배자들과 같다지 않습니까.』
『아,그거야 자기들이 당했으니까 무조건 수배자같다는 거지 뭐….』
7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 형사계.
하루전인 6일 오후 경찰을 비웃듯 수도서울의 한복판 종로2가 서울미용실에서 손님ㆍ종업원 30여명을 위협하고 5백만원어치의 금품을 털어 달아난 2인조 강도를 놓고 경찰간부와 기자들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정황 증거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절대 동일범이 아니니 기사를 작게 취급해달라』는 주문을 해대고 있었다.
가능하면 사건의 의미와 규모를 축소시키기 위해 30여명 가까운 피해자중 주인에게만 간단한 조서를 받고 손님 서너명의 이름만 적어놓은뒤 나머지 피해상황은 파악조차 안한 상태.
『범인을 잡아 장물을 압수하면 어떻게 되돌려 주려느냐』는 질문에 우물거릴 뿐이다.
사건이 나면 무조건 감추기에 급급하고 언론에 보도돼야 콩볶듯 일하는 시늉을 해온 경찰의 악습은 새삼스런 것도 아니지만 이런 태도의 근본 책임은 경찰 고위간부들에게 있는 것 같다.
『큰 사건이 터지면 어떻게 사건을 해결하느냐 보다 왜 그걸 신문에 보도되게 했느냐는 상부질책에 뭐라고 답변할까가 더 걱정된다』는 한 일선경찰관의 고백은 이같은 경찰현실을 잘 반영해준다. 「열 사람이 한 도둑 못막는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13만 경찰의 대부분은 박봉과 과로에 시달리며 순직까지 하는 경우가 있음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고 실제로 한국의 범죄 발생률은 외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그러나 상부의 눈치만을 보며 사건보다 보도막기에 급급한 민생치안으로는 절대로 「시민들의 편안한 삶=치안」을 확립할수 없다는 느낌이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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