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여권 실세·선관위에 전자개표기 납품 뇌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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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해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선 당시 사용된 전자개표기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에 납품되는 과정에서 제조사 측이 지난 정권 핵심 정치인을 포함한 정.관계 인사들에게 수억원대의 돈을 제공한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지검 특수1부는 16일 "전자개표기 제조업체인 관우정보기술이 지난해 입찰에 참여한 뒤 옛 여권 모 의원과 중앙선관위 직원 2~3명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가 포착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관우정보기술 대표이사 유모(42)씨가 지난해 초 지방선거 전자개표기 입찰에 참여하면서 자기 회사가 낙찰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이 핵심 정치인에게 로비자금을 건넨 단서가 드러났다. 검찰은 유씨가 평소 이 정치인과 친분이 있는 로비스트 吳모씨에게 로비를 부탁했고, 이후 吳씨가 이 정치인을 직접 만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관우 측이 입찰 당시 미리 예상 낙찰가를 제공받은 뒤 그 금액을 적어내 낙찰 받은 방식의 '입찰조작'을 했다는 진술과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관우정보기술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회사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해 유씨가 2억원 안팎의 로비자금을 쓴 혐의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유씨에 대해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한편 조만간 吳씨를 소환해 핵심 정치인에게 돈이 전달됐는지와 명목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도 소환해 혐의가 확인되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전자개표기=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대선 때 다시 사용됐다. 투표용지에 찍힌 도장의 위치를 인식하는 광 센서가 부착돼 있어 후보별로 투표용지를 자동 분류하면서 득표수를 실시간으로 집계할 수 있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대선 때 이 개표기 9백여대를 전국에 투입, 개표작업을 5시간 만에 끝냈다.

그러나 개표 오류 및 조작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한나라당이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해 재검표 작업을 하기도 했다. 내년 농협선거와 총선에도 이 개표기가 사용될 예정이다.

전진배.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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