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했던 설날연휴 TV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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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설날 연휴동안 TV와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매우 따분했을 것 같다.
설날연휴에 TV는 방송시간의 상당부분을 주로 러닝타임이 2∼3시간이나 되는 영화·드라마·스포츠 등 방송국 자료실에 쌓여있던 묵은 필름들이 차지해 시간 때우기에 급급했던 인상이다.
MBC-TV는 26∼28일 3일간 하루 평균 방송시간 19시간 중 3분의1이 넘는 7시간 이상을 묵은 영화로 메웠고 KBS도 이에 별로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연휴동안 방송된 외화들은 대부분영화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세 번 이미 본적이 있는 것들뿐이었다.
또 밤낮으로 양 TV가 방송한 방화 여덟 편도 모두 하나같이 극장가에선 흥행에 실패한 수준 이하의 작품들로 거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영화들이었다.
KBS-TV의 경우 시청자들의 성원여부와는 무관하게 앙코르 방송이란 이름으로 재탕 드라마나 기획 물로 긴 시간의 공백을 메웠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성의 있는 준비로 호평을 받을만했던 양 TV의 설날특집 뮤지컬『각시방에 사랑 열렸네』(M-TV)와 『추천석전』(K-lTV)도 지루했던 다른 프로그램들 탓으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정규프로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특집으로 꾸몄던 M-TV의 『남편들의 가요열창』, 연예·스포츠 스타인 대학생들이 특별 출연한 『퀴즈아카데미』, 그리고 고향에 가지 못하고
TV앞에서 시간을 보내야했던 시청자들이 상당히 동감했을 K-1TV의 신춘특집드라마 『기다리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설날TV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휴일 종일 방송에서 다양하고 참신한 기획의 특집프로가 가뭄에 콩 나듯 보기 어려운 것은 방송국의 예산이나 기술적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휴일을 앞두고 무리하게 프로를 제작하는 제작 시스팀과 그에 따른 인력부족 등에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앞으로 평일에도 종일 방송을 하게 될 것에 대비, 방송프로를 제작하는 독립 프러덕션이 활성화돼 이들 프러덕션에서 경쟁적으로 개발한 수준 높은 프로들을 방송국이 매입해 방송할 수 있는 방송환경이 이루어지는 등 방송의 전면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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