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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토론] 누드 열풍 괜찮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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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10여분간 전라 장면이 등장해 화제가 된 프랑스 플레주카주 발레단의 '봄의 제전'중 한 장면 [서울세계무용축제 사무국 제공]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문화 코드의 핵심은 '몸'이다. 그 중에서도 누드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올 들어 몇몇 여성 연예인들의 화보 발간으로 누드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을 통한 확산으로 누구나 손쉽게 누드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면서 누드는 금기가 아닌 일상이 되고 말았다. 최근에는 점잖은 공연 무대에서도 노골적인 누드 장면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누드 열풍은 성(性)의 상품화인가, 아니면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여는 필연적인 과정인가.

▶사회=누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용 폭이 넓어지면서 최근엔 벌거벗은 몸을 상품판촉에 활용하는 '누드 마케팅'을 지나 누드 자체가 상품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증폭되고 있는 걸까요.

▶현=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그 변화가 최근엔 큰 폭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그 기저엔 소비를 자극하고, 말초적인 포르노 팝 문화의 일반화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인터넷 등 전자 통신 매체의 확산이 누드 열풍의 촉매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죠. 연령층도 넓어지고, 눈에 조금이라도 띄게 하기 위해 더욱 강렬한 자극이 가해지면서 갈수록 우리 주변에서 누드를 쉽게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홍=우리만큼 성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사회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정말 퇴폐적인 '성 인프라'가 이처럼 광범위하게 유포된 나라는 없죠. 이런 마당에 누드를 단순히 금기시하고 숨기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처럼 인간의 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폭됐다면 자연스럽게 흘러넘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음습한 성문화를 공론의 장으로 끌고 나온다는 의미에서도 누드에 대한 '백신'을 맞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사회=누드 사진을 찍은 연예인 등 당사자들은 과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는지도 궁금한데요.

▶김중=누드란 분명 예술입니다. 인간 몸처럼 아름답고 성스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현재의 열기는 대단히 상업적인 것이니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누드 자체를 막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얼마 전 나와 같이 작업했던 연예인들도 막상 누드집을 내고 나니 오히려 그 작업이 얼마나 순수하고 깨끗한지 뒤늦게 깨달았다더군요.

▶변=누드가 예술 작품이란 것에는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 다만 왜 젊은 여자 연예인들만이 그 주인공이냐는 것이죠. 결국 아름다움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최근과 같은 누드 열기 속엔 여성의 몸을 특정한 틀로 규정지으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아니 그런 의도가 없더라도 소비자들은 그런 누드 사진을 보면서 여성미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스스로 규격화할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성형 미인의 확산 등 상품화로 귀결되고요.

▶사회=누드를 형상화할 경우 본질적으론 외설이냐 예술이냐 하는 문제로 귀결되지 않습니까.

▶현=어디까지를 예술로 간주하고, 무엇이 외설이냐고 규정하는 것은 정말 모호하고 딱히 기준도 없습니다. 결론적으론 예술품의 공급자가 성찰적으로 이를 바라봐야 하는 문제죠. 그러나 대중 문화에서 소비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고, 결과적으론 대중에 호소하기 위해선 예술적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김홍=예술이냐 외설이냐를 가릴 만한 충분한 사회적 경험이 과연 우리에게 있을까요? 누드 열풍의 문제는 10여년 전 일본에서도 똑같이 커다란 이슈가 됐습니다. 바로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미야자와 리에가 누드 사진집을 냈을 때죠. 체모까지 나올 만큼 충격적이었지만 인간 신체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표현해 "예술적 평가가 가능하다면 체모도 허용할 수 있다"는 사직 당국의 시각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이런 사회적 여과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일본에선 더 이상 누드 사진을 두고 논란이 일지도 않았고, 예술의 영역은 넓어진 반면 상업성이 끼어드는 경우는 적어졌습니다.

▶김중=그런 사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도 정상의 스타급 연예인이 누드 사진을 찍으면 호기심과 엿보기만으로 누드 사진을 보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즉 성의 퇴폐성과 병적인 요소가 치유되면서 대중의 눈높이가 올라가 외설적인 누드가 자리잡지 못하게 되리란 거죠. 임팩트가 강한 사건을 통해 나쁜 것을 걸러내자는 뜻입니다.

▶현=그런 의견은 지나치게 시장 방임주의적인 사고가 아닐까요. 자율시장이란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하는 속성을 띠게 마련입니다. 더욱 노골적이고 천박한 포르노가 흘러 넘칠지도 모릅니다.

▶변=문제는 연예인들의 누드에만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현실입니다. 몸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할 수 있죠. 연예인이 아닌 보통 사람의 누드도 있을 수 있고, 심지어 남자의 누드도 가능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오직 한가지 형태만을 강요합니다. 현재와 같이 여성 연예인 누드가 범람한다면 보통 여성들에게 그들을 닮고 싶은 모방 욕구만 부추길 것이며 아니면 이에 도달하지 못하는 좌절의 아픔만을 줄 것입니다.

▶사회=누드를 바라보는 시각이 뚜렷이 다름을 확인할 수 있군요. 결론적으로 최근의 누드 열기에 어떤 사회적 대응이 필요한지 말씀해 주시죠.

▶변=누가, 어떻게 누드를 소비하는지를 분석해보면 지금의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러한 현상을 비판할 수 있는 다양한 토론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는 훈련을 해야겠지요. 분명한 것은 다양한 이미지의 몸이 나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성 연예인의 몸에만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은 신체에 대한 의식을 왜곡하고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것이 예술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주장은 위험합니다.

▶현=예술은 당연히 금기시돼 있는 것을 깨뜨리면서 발전하고 확장하는 것이겠죠. 그러나 현재의 추세는 전혀 예술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급 연예인의 벗은 몸에만 매몰된 것은 세속적이며 지극히 상업적인 발상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성의 상품화와 남성의 관음성 및 그 시선의 폭력성을 확대 재생산할 뿐입니다.

▶김홍=지금까지 본격적인 누드 작품이 나오기는 한 것일까요. 솔직히 우린 그 문턱에도 못 이르렀습니다. 미야자와 리에의 '산타페'와 같은 고품격 누드 사진 작품의 전범이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의 누드 열풍은 제대로 된 성담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합니다. 복제인간의 가능성, 트랜스젠더의 출현 등 몸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논의거리가 산재해 있습니다. 언제까지 누드에 매달려야 하는지요.

▶김중=아직도 누드는 우리에겐 음성화된 성문화에 불과합니다. 벗은 몸을 보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 미적인 것을 향유하는 우리의 인식도 한 차원 높아질 것입니다. 서양회화사란 결국 누드화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지 않았습니까. 이를 묶고 색안경을 끼고 보면 볼수록 우리의 문화적 역량은 더욱 위축되기만 할 것입니다.

▶사회=오랫동안 말씀 감사합니다.

*** 참석자

▶金重晩 사진작가
▶金弘卓 제일기획 제작본부 국장
▶邊惠貞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 연구소장
▶玄宅洙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사회:김성희 대중문화팀장

정리=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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