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칼럼

봄날은 갔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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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시대가 시간이 아니라 매 순간 역사로 다가왔던 때'(김인숙.'봉지')가 있었습니다. 1970년대였지요, 아마. 그때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더 참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작별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예감했습니다. 현장으로 달려가는 그대들을 말리지 못했습니다. 역사에 뛰어든 그대들을 부러워하며 남은 우리는 부엉이처럼 울었지요. 황지우 시인이 그랬던가요. 새들도 세상을 뜨는데 뜨지 못한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속에서 세속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때 행로가 두 길로 갈라졌습니다.

남은 자들은 떠난 자들이 남긴 말을 기억합니다. 냉철한 이성이 백열등처럼 켜진 세상을 짊어지고 오겠다는, 그 혁명 냄새가 물씬 나던 언약을 말입니다. 세월이 갔지요. 그대들은 감옥에서, 현장에서, 아지트에서 밝은 세상을 기획했습니다. 남은 자들의 할 일은 생채기 덜한 세상을 가꿔 그대들을 위로하는 것뿐이었지요. 대학에서, 기업에서, 숨 막히는 정부 사무실에서 생채기 더 내지 않으려 노심초사했지요.

4년 전 어느 날 그대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젊은 세대의 함성과 함께여서 더욱 기뻤지요. 한 세상 떠메고 같이 가자던 말이 귀에 쟁쟁 울렸습니다. 왜, 그 노래 아시지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입에 물고… 성황당 길에' 하는 노래 말입니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습니다. 들려오는 소식이 뭔가 거칠고 투박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민중을 배운다는 겸손했던 자세와는 달리 '계몽의 시대'라고 호통 쳐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미숙한 탓이려니 했지만, 그대의 정당성을 한번도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알뜰한 맹세'는 시대의 통증을 앓던 우리에겐 진통제였고, 미물스러운 존재를 성스럽게 만드는 꿈이었으니까요. 그대들이 온통 권력을 분점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민중의 시대'에 걸맞았습니다. 그대들의 성난 표정도 언젠가는 온화해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투신의 기억에서 자란 험한 말들을 접고 결 고운 시간을 잇댈 것으로 믿었습니다. 시대가 매 순간 역사가 아니라 평범한 시간으로 흘러가는 것을 못 참는 모양이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바다이야기'는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80년대가 빚어낸 '모래시계' 같은 세상을 참지 못해 뛰어들었던 것 아닌가요? 들리는 소문들로는 수조원에 달하는 도박용 상품권이 이념혁명을 위해 일찍이 문화사업에 뛰어들었던 그대 부근의 사람들과 연관되었다더군요. '문화 르네상스의 부작용'이라 항변해 드릴까요. 아니면, 이 시대로부터 '잃어버린 청춘'을 그렇게 보상받으려 했나요? 그대들이 애지중지하던 줄잡아 500만 명의 민중이 도박의 바다로 몰려갔습니다.

청와대 홍보실 사람들과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은 그때 그런 기약으로 헤어졌습니다. 두 길이 만나면 문화국가의 폭죽이 터질 줄 알았는데 고작 '배 째는' 얘기만 나눠야 했나요? 국회의 386과, 삼성.현대.LG.SK의 임직원들도 그렇게 헤어졌던 사람들입니다. 두 그룹이 만나면 경제가 만발할 줄 알았습니다. 여느 시민들과 진보단체 회원들도 그렇게 헤어졌던 사람들입니다. 작별 끝의 만남은 코드가 아니라 코러스라고 생각했지요.

그대들이 피워낸 꽃이 더러 씨를 뿌리겠지만 봄날은 간 듯하군요. 오셨으면 할 얘기 많았을 겁니다. 못한 얘기 간직해야겠군요. 이제 알겠습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 마음이 없었음을. 연분홍 치마 곱게 접어 두겠습니다. 서럽지만, 봄날은 갔습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