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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59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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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백범 환국… 임정·미군정 대립 싹터/웅변가 조소앙,전농결성식서 선동연설 화제
이승만의 귀국에 이어 김구·김규식·엄항섭·이시영 등 임정요인 15명 제1진이 11월23일 드디어 환국했다. 홍진·김원봉·김성숙 등 2진 23명도 12월2일 귀국했다.
백범은 환국한 이튿날 성명서를 발표,『개인자격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이것은 미군이 이러한 성명서를 조건으로 백범에게 비행기를 내주어 서울로 데리고 온 것이라 했다. 그러나 임정의 선전부장 엄항섭은 그 이튿날 『임정은 절대 해체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때부터 미 군정과 임정은 벌써 대립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 이같은 갈등이 정면 충돌한 것은 환국 한달 남짓한 12월31일 임정 내무부장 신익희가 미 군정청 소속의 경찰기구 및 한인직원을 전부 임정지도하에 예속시킨다는 포고문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미 군정이 이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자 신익희는 백범에게서 떨어져 한민당 쪽으로 전향,미 군정으로 붙어버렸다.
나는 권오직의 지시로 임정에도 출입하게 되었다. 제일 먼저 가까워진 사람이 조소앙이었다. 조소앙은 함안조씨들이 일가라고 그를 후원하고 있었다. 함안사람인 조억제 소개로 나는 조소앙과 개인적인 접촉을 갖게 되었다.
그때 조소앙은 충무로 2가에 있는 한 상점 2층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조소앙은 체격이 크고 웅변가였다. 그는 동경 명치대학 출신으로 임정요인 가운데에서는 와세다대학 출신인 신익희와 더불어 제일가는 인텔리였으며 공상적 사회주의 비슷한 이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는 뒤에 한국사회당을 조직한 일도 있었다.
12월8일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의 결성식이 있었다.
그때 조소앙이 내빈으로 초청되어 축사를 했다. 그때 공산당에서는 45년도 소작료를 삼·칠제로 한다고 결정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지주와 소작인은 오·오제로 반씩 갈라먹게 되어 있었다. 이북에서는 영·십제로 지주에게는 벼 한 톨도 주지않고 소작인이 전부 차지한 것으로 하여 그 중에서 인민위원회가 30%를 현물세로 받아들였다.
즉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가 지주 대신 30%를 받아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울의 공산당중앙위원회에서는 대지주는 동양척식회사와 일본인들이며 조선사람 지주는 대지주가 적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벼 한 톨도 주지 않으면 그들이 굶어죽게되니 소작인이 70%만 차지하고 30%는 지주와 갈라 먹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농결성대회에 내빈으로 초대받은 조소앙이 축사를 위해 연단에 올라가더니 『전국의 농민대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의 편입니다. 여러분이 땀흘려 지은 농사를 왜 지주에게 30%나 거저 준단 말입니까? 절대 주어서는 안됩니다. 전부 다 여러분이 먹으십시오』하고 선동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농민대표들은 조소앙의 말에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며 열광했다. 그는 이북의 소련군 정치부와 김일성이 한 것과 똑같은 말을 해 농민들을 선동하는 것이었다. 순간 대회장은 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때 공산당의 김태준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나는 그가 어떻게 이 혼란상태를 수습할 것인가 긴장해 지켜봤다. 『여러분! 이 내 입이 보입니까?』하며 손가락으로 먼저 자기의 입을 가리켰다. 그는 『여러분에게도 입이 있지요? 입은 뭣 때문에 있습니까? 말을 하기 위한 때문에요?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말을 하자면 먹어야합니다. 사람은 하루 세끼는 먹어야 합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좋은 사람이나 좋지못한 사람이나 하루 세끼는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친일파나 지주를 반대해 싸우는 것은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36년간 우리는 일본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맞아죽고 굶어죽었습니까? 친일파나 지주들이 비록 과오를 범했다해도 그들을 굶어 죽게할 것이 아니라 회개시키고 인간개조를 시켜 인력이 부족한 우리의 힘에 보충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복수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고 외쳤다.
이어 『우리는 극좌모험주의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무책임한 선동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조선공산당중앙위원회가 제의한 삼·칠제는 현 단계에 있어서는 가장 현실적인 정책입니다. 금년은 이미 추수가 다 끝났습니다. 금년 추수의 분배는 삼·칠제로 하고 명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시간을 두고 신중히 연구해봅시다. 현재 우리나라 농토의 약 80%는 일제식민지통치자들의 것입니다. 결국은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될 것입니다.』
그는 한마디 한마디를 청중의 귀에 입을 대고 하는 것처럼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농민들이 그 말이 옳다는 듯이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조소앙의 선동연설도 대단한 웅변이고 김태준의 반박도 열변이었다.
나는 이른 아침 조소앙의 방을 자주 방문했었다. 그의 베개 옆에는 언제나 술병이 놓여 있었다. 새벽부터 혼자 술을 마셔 낮에도 얼굴이 벌겋게 되어 있었다.
그는 차가운 일본 다타미방에서 홀아비생활을 하며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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