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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놓고 쉴 수 있는 설을… (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설을 앞두고 각종 강력범죄가 꼬리를 무는 가운데 전국 경찰에 또 한차례 방범 비상근무령이 내려졌다. 22일부터 월말까지 10일간 치안당국은 모든 경찰관이 총기ㆍ실탄휴대 근무에 나서도록 하는 한편 은행ㆍ백화점ㆍ금은방 등 취약업소에는 무장경관을 24시간 배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연말연시ㆍ휴가ㆍ추석 등 한해에도 몇차례씩 계기가 있을 때마다 되풀이되는 경찰의 연례행사를 지켜보면서 시민들은 그러나 솔직히 말해 마음이 놓이지도,미덥지도 못하다. 「근절」 「일소」 등 경찰의 거듭되어온 장담과 다짐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기괴한 범죄는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려온 것이 경험이자 눈앞의 현실인 때문이다.
요 며칠 사이 신문에 보도된 사건만을 꼽아도 카페주인과 종업원들의 손님 살해 암매장,용인 10대 소년들의 70대 노인 폭행살인,중학생의 TV수사극 흉내 유괴미수,구청공무원의 폭력배동원 청부강도 등 일반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어려운 범죄들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좀도둑이나 단순강도 사건은 아예 사건취급도 못받을 만큼 떼강도ㆍ조직폭력ㆍ인신매매ㆍ마약 등 반인륜ㆍ반사회의 끔찍한 강력사건들이 잇따라 범죄피해 불안증은 이미 사회 전반에 확산된 상태다.
검찰의 집계에 따르면 79∼88년 10년 사이 살인ㆍ강도ㆍ강간 등 강력범죄는 62% 늘었고 이중 강도는 1백62%,강도 강간은 자그마치 7백40%가 더 일어났으며 강도범의 54%,강간범의 35%가 19세 이하 미성년자였다.
또 지난 한해 전체 범죄 발생수가 1백만건을 넘었는데 이는 당국에 신고된 건수일 뿐 실제 건수는 그보다 6배 이상 많은 6백여만건으로 추산되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 범죄로부터의 시민생활보호는 다른 무엇보다 시급한 우리 사회 「발등의 불」임이 분명하다.
민생치안 문제로 고통받는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정계개편같은 것은 부질없는 공론에 불과하며 경제안정조차도 부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마음놓고 살 수 있는 세상」보다 더 급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ㆍ경찰 등 치안당국의 범죄예방ㆍ단속은 이같은 「민생보호」의 절실한 기대와 요구에 미치지 못한 채 한계에 부닥친 인상을 주어왔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차례 강조한 바와 같이 이미 고도산업사회의 문턱에 진입한 우리 사회에서 이제 범죄에 대한 대응은 사회 각 부문의 유기적ㆍ종합적 노력으로서만 결실을 거둘 수 있다고 본다.
요즘 나타난 범죄현상은 연소화ㆍ조직화ㆍ흉폭화를 특징으로 하면서 동기도 생계가 아니라 향략과 치부에 있으며 일부에서는 기업화ㆍ국제화 형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청소년 대책을 서두르고 검찰이 조직폭력배 일제 검거에 나선 것은 그런 점에서 이제야 치안대책이 핵심을 파악하고 가닥을 잡아가는 느낌을 준다.
올 들어 시행한 유흥업소의 영업시간 제한 이후 범죄 발생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나 줄었다는 통계는 이와 관련해 하나의 시사가 됨직하다.
범죄를 유발하는 동기및 환경과 기회를 가능한 한 차단해 감수성이 예민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10대들이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치안대책의 요체라고 본다.
아울러 검ㆍ경을 중심으로 한 치안조직이 유기적인 공조관계를 이루어 폭력조직을 철저히 분쇄하고 범죄가 나면 범인을 반드시 잡아내는 가시적 위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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