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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Life] 점심 맛집 - 서울 사직동 청국장 두부찌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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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 처지라 점심시간만 가까워지면 고민에 빠진다. 교내 식당을 매일 가자니 그렇고, 자장면 배달도 한두 번이다. 도시락도 싸봤지만 반찬 만드는 수고(?)에 질려 사흘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학교 가까이에서 보물 같은 밥집을 발견했다. 서울 사직동 사직파출소 앞. 작고 허름한 식당이다. 변변한 간판도 없이 빛바랜 붉은 천막 위에 '청국장 두부찌개(736-0598)'라고 쓴 것이 전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서오시오. 잉~"하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손님을 반긴다. 간판 메뉴인 두부찌개를 주문하자마자 밥상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반찬이 깔린다. 파김치.배추김치.호박볶음.마늘쫑무침.도라지나물.깻잎장아찌.밴댕이젓.콩나물.시래기된장 등 열두어 가지다. 큼지막한 밴댕이를 한젓가락 들어 입에 넣고 시장기를 달랠 쯤 두부찌개가 나온다.

달아오른 장작불 같은 붉은 국물에 뭉툭뭉툭 썬 돼지고기와 두부가 얌전히 앉아 있다. 국물을 한숟가락 떠넣는 순간 온 몸의 감각이 혀에 집중되면서 "아, 맛있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수라상과도 바꿀 수 없는 맛이다.

국물은 떠먹고 두부는 김치에 싸서 먹으니 두부김치를 따로 주문한 듯하다. 국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한번 가면 두 그릇분 찌개를 비우는 건 기본이다. "앗따, 진짜로 그렇게 맛있능게라?"하면서 국물을 더 채워주는 주인아주머니의 넉넉한 마음도 매력이다.

반찬 가짓수가 많기 때문에 큰 대접을 달라고 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어도 별미다. 이럴 땐 코린 청국장이 제격이다. 잘 삭은 콩알과 부드러운 두부가 다른 반찬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 값은 두부찌개든 청국장이든 3천5백원이다. 이렇게 팔아서 남나 싶다.

저녁 시간엔 여럿이 가서 제육볶음(1만2천원)을 주문해 보자. 큼직하게 썬 돼지고기를 고추장으로 양념하고 매콤한 청양고추와 부추로 향을 더했다. 단골이 되면 가끔 구운 김을 보너스로 받기도 하고, 홍어찜(2만원)을 주문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장소가 워낙 좁다 보니 손님이 밀리는 점심시간엔 예약도 받지 않고, 다른 손님과 합석할 때도 많다. 그래도 흐뭇하다. 주차공간이 없으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 밥 먹고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이나 사직공원 앞 버스정류장까지 산책하듯 걷는 기분도 괜찮다.

신계숙(배화여대 관광중국어통역과 교수.사진)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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