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동구|열기의 현장을 가다<14>″한국과 합작하고 싶다〃″무얼할꺼냐〃엔″글쎄…〃|불가리아 힘겨운 경제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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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해 11월9일 불가리아 소피아시의 불가리아무역회관 1층40여평의 홀에서는 한국상사원 6명이 불가리아 기업체 대표들과 한·불가리아 무역상담을 벌이고 있었다.
이 무역 상담회는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소피아무역관이 서독 프랑크푸르트주재 6개 한국상사원들을 특별초청, 양국간의 무역확대를 위해 마련한 것이다.
이 무역상담회의 대화는 불가리아 무역및 경제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였다.
-어서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한국과 합작회사 설립이 가능한지 알고 싶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실례지만 회사를 대표하십니까.『아참, 죄송합니다. 명함이 없습니다.』
-그럼 여기 이 종이에 써주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펜을 좀 빌려 주시겠습니까.』
-여기 펜이 있습니다 불가리아측 상담자는 자기 이름을 썼다.

<명함 없이 상담장에>
-회사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 불가리아인은 회사 이름을 다시 덧붙였다.
-주소와 전화번호는 없습니까.
불가리아인은 이어 자기회사 주소와 전화번호를 한국상사원이 제공한 펜으로 종이 위에 다시 썼다.
-감사합니다. 합작투자를 원하시는데 어떤 아이템과 합작방법을 원하시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아이템과 방법은 합작투자를 합의한 뒤 찾을 수 없겠습니까』 한국상사원은 여기서부터 말문이 막혀버렸다.
외국기업과 상담을 하면서 명함도 준비하지 않는 불가리아 기업체 대표는「합작」을 얘기하면서 무엇을 합작할 것인지 계획조차 없이 다짜고짜 회사를 같이 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담에 참가한 다른 한국상사원은 불가리아 기업체 대표들 중에는 한국상품수입을 상의하러 왔다고 말하면서『한국에서 무엇을 수입하는 것이 좋으냐』고 물어오는 일이 많았다고 이번 상담의 어려움을 얘기했다.
이 한·불가리아 무역 상담회에는 1백5개 불가리아업체가 참가했다. 물론 실적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대부분이 첫마디는「합작」이었다고 한국상사원들은 말했다.
불가리아 기업체 대표들의 이 같은 무모한 상담은 격변하고있는 불가리아경제개혁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 무역 상담회에 참가한 불가리아 기업체 대표들 중에는「사장」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른바 자기 기업체를 하겠다는 자영기업주들이다.
이와 관련, 불가리아의 한 중견기자는 풍자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사회주의국가 모두가 생산성에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불가리아에서 유독 생산성이 높은 것이 있다. 그게 바로 사장이다.』우후죽순처럼 자영기업을 하겠다고 다투어 나서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사회주의국가에서 기업체의 최고책임자는 보통 총지배인, 또는 지배인으로 불린다.
기업의 소유가 국가이거나 사회가 주인일 경우 사장이 아니고 그 기업을 운영·관리하는 사람은 지배인이다.
그러나 불가리아에서 요즘 무역을 하고자하는 사람들이 내미는 명함은 보통「사장」으로 돼있다. 사장이란 기업 사유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불가리아에서는 지난해 약 6천 개의 개인회사가 생겼다.
이들 개인회사는 아직 1인 단독 회사, 즉 사장이 직원과 급사까지 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들 기업체들도 생긴지가 아직 1년도 안 되는「신생아」들이다.
불가리아는「현재의 소련보다 더 소련적인 국가」라는 말을 듣고 있다.
소련이 이미 정치·경제개혁을 시도한지 5년이 넘었으나 불가리아는 경제개혁은 1년 남짓, 정치개혁은 겨우 2개월에 불과하다. 불가리아는 지난해 11월 35년 통치의 지프코프가 사임하기까지는 5년전 소련을 본받는데 치중해왔다. 불가리아는 2차대전 전까지는 인구의 80%가 농업에 종사한 농업국가였다.

<영농인구 줄어 고민>
그러나 1944년 사회주의 혁명후 소련주도 동구강제개편에 따라 공업화를 추진, 1988년에는 공업이 총생산의 60·1%를 차지했으며 농업은 11·4%로 산업구조가 뒤바뀌게 됐다.
전통적인 농업국가를 인위적으로 공업화하면서 조그만 농촌마을에도 공장이 들어서며 영농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현상은 소피아에서 80km. 남쪽의 스브드니아 마을에서도 볼 수 있었다. 40여 가구로 이루어진이 산골마을의 젊은 노동력 대부분도 인근 초컬릿공장에 흡수돼 농사지을 사람이 없었다.
집단농장에 흡수되지 않고 평생을 농사일만 해왔다는 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의 80세된 한 할아버지는 5남매의 자녀가 모두 도시로 나가 동갑의 할머니와 단둘이 양과 닭을 치며『이제는 힘이 없어 일하기도 수월찮다』며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큰 일이라고 한탄하고 있었다. 불가리아의 농업이 낙후될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이 노인의 평범한 말에서도 그 일단을 찾을 수 있었다.
불가리아는 매년 4%의 경제성장을 이룩, 지난 8년간 약40%의 국민총생산 증가를 이룩했으나 동구국가중 개인소득에서도 가장 뒤진 나라 가운데 하나로 머물고 있다.
특히 농업의 퇴조는 공업성장에서 이룬 발전과 달리 국민생활에 커다란 문제점으로 등장, 국내 불만의 요인이 돼 오고 있다.
공업은 지난88년 국가총자본투자의 51%를 차지했으나 노동자의 생산성 정체에 산업설비 및 기술낙후로 역시 커다란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불가리아는 산업체질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 지난해 1월23일 이른바「경제혁명」을 시도했다.
「조례56호」로 불리는 이 새조치는▲기업의 사유화 인정▲파산인정▲정부의 개인기업 불간섭등을. 명시하고 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변혁을 보여주는 내용들이다.
한·불가리아 무역 상담회에 참가한 불가리아인들도 모두 어김없이 인용하는 것이「조례56호」였다.
『우리는 조례56호에 의해 개인도 외국회사와 직접 상담할 수 있다. 무역도 할 수 있고 그래서 합작회사도 정부 간섭 없이 시작할 수 있다. 한국기업이 우리회사와 합작투자를 할 생각이 없는가』
한 한국상사원은 불가리아인들이 의욕은 앞서는 대신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소피아시 차파예프가에 있는 불가리아 정보유통회사 인포르마를 방문했을 때 이 회사 지배인 보그단 우가르친스키박사는 그래서 지난해 11종류의 각종 무역안내 지침서 11만부를 제작, 1만1천여 개의 크고 작은「기업체」에 배부,『불가리아인들을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86년 국가기관으로 설립했다가 지난해 3월 사단법인으로 등록, 회사 형태를 갖춘 이 기관은 불가리아의 경제변혁에 대응하기 위한 서비스업체로 외국기술의 불가리아 이전을 위해 각종 국내외정보를「판매」하고 있었다.
우가르친스키 박사는 『불가리아기업인들이 정상적인 경영및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육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기업체는 이제 막 신천지에 발을 내딛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인포르마는 이들 불가리아 기업들을 위해 데이타뱅크가 필요하다고 생각, 각종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교육용자료를 계속 발간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대외 자유무역 허용>
인포르마는 상근직원 2백명에 지점 12개를 가진 자본주의 사회의 경영형태 도입을 시도하고 있는 기업으로서 불가리아에서는 보기 드문 큰 규모의 기업이다.
우가르친스키 박사는 불가리아경제체제는 기존 국가소유기업에서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회사기업체제로 넘어가면서 커다란 진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불가리아는 지금까지 각종 생산업체는 생산만 담당하고 대외무역은 정부기관인 대외무역사무소 (FTO)가 처음부터 끝까지 결정해왔다.
그러나 조례56호가 발효되면서 각 개인이 FTO의 허가 없이도 외국회사와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 불가리아의 각 생산업체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하고있다는 설명이었다.
소피아뉴스지의 아니 이반체바 경제부장은 불가리아 경제인들의 문제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한국상사원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알고싶다고 말했다.
한국상사원들이 불가리아 기업체대표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으로 지적한▲합작회사에 대한환상▲상담기술 미숙▲국제경제정보 부족, 그리고▲이윤추구의식 결여등을 얘기하자 이반체바부장은 『우리도 대충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그러나 명함준비도 없이 나타난 불가리아「사장」이 무엇을 합작하자는 것인지 구상이 전혀 없는 자세로 상담에 응했다는 얘기를 듣고는『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제 불가리아는 막 첫걸음을 내디딘 어린아이와 같다. 앞으로 열심히 배우면 좋아질 것』이라고 가까스로 대답했다.
불가리아의 경제개혁은 정치개혁 만큼 요란하지는 않으나 안으로 고통하며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글 김동수 부국장 진창욱 기자
사진 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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