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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스크린 독과점 끝내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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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스크린 독과점, 이제는 끝내야 한다.

영화 '괴물'이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이 정도의 대박 영화가 나오려면 돈과 아이디어, 그리고 시대상황이 맞아야 한다. 그럴 때 한 편의 영화가 문화면을 넘어서 하나의 현상이 된다. 한국사회사에 기록될 영화를 만든 '괴물'의 봉준호 감독과 최용배 제작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그러나 칭찬은 여기까지다. '괴물'은 한국 영화산업과 문화라는 생태계의 공동체 규칙을 어겼다. 영화는 전국 620개의 스크린에서 개봉했다. 거의 절반이다. 좌석 수로는 68%의 독과점을 기록했다. 이것은 스캔들이고 기네스북에 기록될 폭력적 수치다. 자본주의의 천국 미국에서도 지킬 것은 지킨다. '반지의 제왕'은 세기적 화제작임에도 3703개 스크린을 잡았다. 전미 스크린 수 3만8000개의 10%가 안 된다.

선진국들이 도덕적인 가치 때문에 독과점을 규제하고 반칙자에게 천문학적 벌금과 함께 세 끼 콩밥을 먹이는 것은 아니다. 시장 독과점은 윤리적인 가치에도 반하지만, 시장의 발전에 10의 이익을 주는 대신에 90의 폐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독과점은 '나 혼자 돈을 벌기 위해 타인의 시장진입을 막는 경쟁자 추방과 제한 행위'다. 그래서 창의성을 높이는 노력보다는 스크린 싹쓸이 전략과 융단폭격식 대박 마케팅에 의존하게 된다. 영화의 창의성이 떨어지고 결국 관객이 외면하게 되어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고 쪼그라들게 되는 것이다.

'괴물'이 독과점 행위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1999년 '쉬리'의 성공과 함께 시작된 '한국영화 붐'은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괴물의 성장 역사이기도 하다. 그 결과 한국영화 붐은 착시현상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붐 동안 관객 수는 3배 성장했지만 박스오피스보다 5배나 컸던 비디오.DVD 시장이 60% 가까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독과점을 산업의 역동성으로 치켜세우거나 외국 영화를 이기는 전략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자본이 사람들의 생각을 대박 마인드로 길들인다. 사실 이게 독과점의 가장 두려운 폐해다. 전도된 가치관이 지배하는 현상을 '대박증후군 사회'라 부르는데, 성공해서 부와 명성을 거머쥔 사람이 멋지게 보이고 결국 '옳은' 사람으로 평가되는 현상이다. 그러면 김기덕 감독같이 예술적으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지만 흥행에서는 실패하는 사람은 독선적이고 '그릇된' 사람으로 보인다.

경제학의 새로운 이론으로 각광받고 있는 '공룡의 긴 꼬리 법칙'에 따르면 긴 꼬리에 해당하는 매출이 몸통을 능가한다. 아마존사 수익의 절반 이상이 1년에 겨우 한두 권 사는 80%의 고객에게서 나온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경제시대의 슬로건은 '괴물'과 같은 싹쓸이-주자일소-끝내기 만루홈런의 초대박 '소품종 대량판매'에서 팀플레이-주자 더하기-내야 안타의 공동체주의적인 '다품종-소량판매(Selling Less of More)'로 바뀌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규모의 경제'와 '다양성의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두 가지 정책목표가 현재 모두 실패했다. 산업화는 다른 말로 하면 '독과점 욕망 키우기 정책'이다. 선과 악의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산업화와 함께 독과점 금지에 대한 효과적인 정책이 집행되어야 했다.

스크린 수(좌석 수) 제한이 시장 확대와 다양성을 모두 살릴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제도다. 물론 이런 제한에 성수기 예외조항 등을 추가할 수는 있다. 지금의 한국영화 시장은 누가 봐도 실패한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한국 영화의 다양성 확보와 전체적 발전을 위해 정부가 눈물을 머금고 개입할 때다. 이를 통해서라도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

강한섭 서울예술대학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