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열기의 현장을 가다-|스스로 짓는 「마이홈」…32년 ˝역사˝|불가리아 주택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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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금까지 2O년이 걸렸지만 완공하자면 아직도 12년이 더 걸립니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집 하나 짓는데 32년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소피아시 중심에서 자동차로 20분거리의 시메노보 타운은 해발 2천2백90m높이의 비토샤산을 향해 한동안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경사진 산언저리에 조용히 위치하고 있다.
멀리 소피아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이 마을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보기 드문 2∼3층짜리 대형주택이 밀집한 전원동네다.

<3층짜리 호텔지어>
좁은 아스팔트포장골목길에 차를 세우자 가로 40㎝, 세로 3O㎝가량의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비토샤 호텔」.
밝은 베이지색 3층짜리 새집이 호텔간판을 버젓이 달고 있었다.
대지 3백4O평에 지하1층, 지상3층의 총 건평 1백50평짜리 이 호텔은 야킴 스트라시니코프씨(56)와 나디아 스트리시니코바씨(53) 주인부부의 평생의 역작이었다.
주인부부가 각각 36세, 33세때 공사를 시작해 이미 장년이 된 지금 웬만한 건물골격은 다 갖추었으나 공사를 완전히 끝내자면 이들이 노년기에 들어선 68세, 65세 때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지금 큰손자 시메온이 8세인데 이 아이가 20세가 되는 2001년에 공사가 모두 끝나는 셈이지요.』
남편 야킴씨는 손자 시메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3대에 걸친 「자그마한 집」공사를 얘기할 때 평생을 걸려 피라미드공사를 했다는 이집트의 파라오같이 당당한 모습이었다.
이들이 파라오만큼 위대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 비토샤 호텔을 짓는데 남의 도움없이 거의 모두를 부부가 자기들 손으로 하나하나 쌓아 올렸다고 말할 때였다.
『혼자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을 빼고는 모두 우리부부가 힘을 합쳐 하나씩 해나가고 있습니다.』
야킴씨 부부는 지하 및 지상1층의 철근콘크리트공사를 빼고는 벽돌쌓기·배관·전기공사·유리창·문짝·미장공사·타일·벽지는 물론 지붕공사와 페인트칠까지 모두를 자기들 손으로 했다고 말했다.
야킴씨 부부는 57년 결혼, 소피아시에서 작은 아파트에 살다가 결혼 12년후인 지난 1969년 「우리들의 집」을 힘을 합쳐 짓기로 결정했다.
설계사인 친척에게서 설계도면을 얻고 은행에서 3천레바(공식환율 2천7백달러)의 융자를 확보한 뒤 건축자재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웬만한 기본자재가 모이자 지반공사를 시작, 1층과 지하공사를 3년간에 걸쳐 해냈다.
당초 자동차수리공이었던 남편 야킴씨는 건축에 대해 문외한이어서 철근콘크리트 공사는 남에게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달 수입 2백50레바 정도였던 야킴씨는 개인적으로 일손을 구할 경우 하루에 50∼1백레바 하는 인부품삯을 벌수가 없어 그 다음부터는 직접 자기손으로 하기로 작정했다.
첫 지하 및 l층 공사는 무난히 끝났다.
부부가 하루에 많이 일할 때는 8∼9시간씩 종일 매달려 집짓기에 몰두했다.
첫단계 3년공사가 끝나고 자금이 달리기도 했지만 은행융자의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그후 2년간은 모든 공사를 중단했다.
처음엔 의욕이 앞서 무리를 해 야킴씨는 허리를 다쳐 6개월간 고생했으며 병원에 입원까지 하기도 했다.
그는 퇴원하자마자 곧장 다시 공사장에서 붙어살았다.
『집짓기 시작 전에 어머니를 찾아가 상의했었지요. 그리고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걱정스런 말씀을 드렸고요.』
야킴씨는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돈도 문제고 집짓는데 전혀 경험이 없어 젊음만 믿고 도전을 했다는 얘기였다.

<돈떨어지면 손놓고>
첫공사 시작 5년후 야킴씨는 다시 은행융자를 얻고, 자재를 사모으고 손으로 시멘트를 만지기 시작했다. 2단계 공사인 2층 공사는 8년이 걸렸다. 물론 겨울철은 쉬었고 날씨가 나쁘거나 가정행사가 있으면 일을 할수 없었다.
다시 후반 몇 년간은 3단계 공사를 위해 돈벌이를 해야했었다.
3층공사인 3단계공사는 다시 7년이 걸렸다. 따라서 지금까지 모두 20년이 걸려 본채공사의 대부분은 끝냈다.
결혼당시 가진 것 하나없이 맨몸으로 신랑·신부를 맞았다는 야킴씨 부부는 『물 두잔 떠 놓고 식을 올렸다』고 말하며 『우리는 몹시 가난했었다』고 그들의 새 인생 출발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호텔을 겸한 이 집이 현시가로 4만레바 정도는 될 것이라며 스스로도 든든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소피아시내 25평짜리 낡은 아파트 1채가 2만레바 정도인 것에 비교하면 두배나 되는 집값이다.
불가리아의 1레바는 공정환율로 0·9미달러. 비토샤 호텔의 부동산가격은 약4만5천달러로 우리 돈으로는 3천만원이 조금 넘는다.
20년 전 집짓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벽돌한장 전선 한줄 값까지 면밀하게 기록한 「역사책」같은 장부를 갖고있다는 야킴씨는 이처럼 오랜 기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자금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킴씨는 약 1주일 걸리는 현관부분공사에 외부인건비가 1천4백레바 필요하며 이것은 자신의 수입 7개월 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관의 시멘트작업·도장작업·그라인딩 및 장식까지 일일이 자재를 사서 직접 자기손으로 해냈다는 설명이다.
야킴씨는 지난 20년간 자기집을 지으면서 이제는 집짓기 박사가 됐다고 말했다.

<노하우 얻어 취업도>
그는 경험에서 얻는 기술로 현재 국영건설회사에서 시간제 타일공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집짓는 자금 조달방법도 집짓는 일만큼 끈질긴 것이었다.
은행에서 융자를 얻어 재료를 사고 공사를 한뒤 돈이 떨어지면 공사를 중단한다. 부인 나디아씨가 소피아시내 국립역사박물관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며 매달 2백30레바를 벌고 자신도 건축공사장에서 돈을 벌어 은행빚을 조금씩 갚아나간다. 한번에 3천레바의 융자를 받으면 이를 상환하는데는 보통 2∼3년이 걸린다.
야킴씨는 2층공사가 끝났을 때는 방3개를 호텔식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협동조합에서 투숙객의 숙박료로 일정액의 가입비와 세금을 지불하고 수입을 올린다.
지난해 3층공사가 끝나 모두 5개의 방을 빌려줄 수 있게돼 올해부터는 수입도 오르고 그래서 아직도 남아있는 3천레바의 은행빚을 쉽게 갚아나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사회주의국가의 공통적인 현상인 주택난은 이처럼 불가리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주택이 국가소유인 소련과는 달리 개인소유가 허용되는 불가리아에서 설령 주택자금을 갖고 있더라도 소피아 시내 같은데서 아파트를 구하려면 10년이상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다.
수도인 소피아의 아파트 대부분은 한국의 국민주택규모 이하다.
큰 것이 80평방m로 27평 안팎이고 보통 크기가 60평방m로 18평 정도다.

<18평서 16년간 버텨>
『공산당원으로 중상류생활을 한다』고 말하는 코체 스토야노브씨(40)부부의 아파트는 소피아 중심가의 58평방m짜리로 소규모다. 이 아파트는 침실 1개·거실 1개에 부엌과 화장실이 전부다.
이들 부부는 이 아파트를 16년전에 구입, 큰아들 미트코(15), 막내반초(12)와 함께 살고있다.
침실이 1개뿐이라서 부부는 거실에다 침대를 놓고 기거한다며 이날 취재진이 방문하기전 거실내 침구를 모두 치우고 손님을 맞았다.
부부침실겸 거실에는 10여년이 지난 것 같은 소파 1세트와 벽면에는 옷장이 놓여져 있었다.
트럭운전수인 남편 코체 스토야노브씨와 열쇠공인 부인 타냐씨(37)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이 점차 비좁아 더 큰집을 구하고 싶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자포자기조로 대답했다.
이들 부부의 수입은 월 5백레바 정도. 이들은 이 같은 집사정때문에 소피아에서 남쪽으로 30㎞떨어진 시골에 대지를 마련, 여러해에 걸쳐 방6개짜리 2층주택을 최근 새로 지었다고 말했다.
비토샤 호텔 취재를 마치고 다음날 소피아에서 만난 한 불가리아 기자에게 야킴씨 부부얘기를 하고 『이 같은 기사가 이곳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불가리아 기자는 『그런 기사 본적이 없다』면서 『그런일은 이곳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에 뉴스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서방에서는 인간승리의 좋은 예로 커다란 얘깃거리가 될 수 있을 야킴씨 부부의 휴먼스토리가 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신기한 얘기가 되지 못한다는 설명이기도 했다.
(글) 김동수 부국장, 진창욱 기자
(사진) 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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