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성인 뮤지컬 만든 여성 5인 '19세 이상 청취가' 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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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첨엔 다소 얌전했다. 아니 눈치를 본다고 할까. 그런데 누군가 한 명이 과격한(?) 발언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성적 취향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다음달 9일부터 서울 역삼동 웅진 씽크빅 아트홀에서 공연되는 '라롱드'(La Ronde). 뮤지컬로는 보기 드물게 '19세 이상 관람가'를 표방한 성인용 작품이다. 불륜과 양다리는 물론, 끈적끈적한 대화와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노골적인 포즈도 여러 차례 나온다.

그런데 이 뮤지컬을 만든 창작자들이 몽땅 여성이다. 박혜선(35) 연출자를 필두로 작사 조민영(30).한아름(29), 작곡 장소영(35), 안무 이란영(37) 등이다. 모든 창작 파트를 여성으로만 포진시키기는 극히 이례적인 일. 어떤 의도로 이토록 야하고 은밀하고 도발적인 작품을 만든 것일까.

이들과 뮤지컬 '라롱드', 그리고 한국 여성의 성심리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이름하여 여성 뮤지컬 창작자 5인방의 성(性) 수다. 참고로 장소영씨만 결혼을 했고, 나머지 4명은 아직 싱글이다(솔직함을 위해 이름은 밝히지 않고 ABCDE로 표기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 성, 시대와 장소 차이 없다

B='라롱드'는 본래 원작이 있다. 오스트리아 작가가 1890년대에 썼다. 윤회.순환의 뜻이다. 창녀.군인.젊은 신사.하녀.화가 등 10명의 남녀가 나오는데 다들 얽혀 하나의 원을 구성한다. 백작은 여배우와 자고, 여배우는 다시 화가를 가지고 놀고, 화가는 또 어린 모델을 농락하는 식이다.

D=원작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만들까 고민했다. 근데 괜히 한국적으로 한다며 이런저런 장치를 구상하니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의식은 이미 서구화되지 않았나.

A=신기한 것은 원작의 에피소드가 2006년 대한민국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옛날에도 점잖거나 고상하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툭 하면 '성적 타락'이니 '세상 말세'니 개탄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성에 대한 이중성은 똑같다.

C=굳이 한국적으로 바꾸었다면 여성 등장인물에게 은근슬쩍.내숭.시치미 적인 요소를 넣었다고 할까. 지금도 사회 고위층의 변태적 행각이 보도되곤 하는데, 이 작품에도 성적으로 가장 문제가 있는 사람은 상류층이다.

# 성적 만족도>정신적 사랑

D=난 하녀란 인물에게 애착이 간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최대한 이용해 신분상승을 꿈꾼다. 섹스 어필이니, 성적 매력이니 갖가지 포장을 하지만 현재 우리 여성도 비슷한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있는 게 아닐까.

E=작품을 보면 남성들은 성기 크기와 섹스 시간에 집착하는 것으로 나온다. 여성에겐 그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남성이 물리적인 것을 중시한다면 여성은 정서적 교감, 상냥한 태도, 내 말을 잘 들어주는가 이런 것들이 훨씬 중요하다.

B=과연 그럴까. 그것도 '여성은 이러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습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난 아니다. 크기.시간 중요하다. 다만 그게 100%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은 훨씬 복잡하다.

E=어느 정도 수긍한다. 예전에 말은 잘 통하지만 성적으로 썩 좋지 않았던 남성, 반대로 유대감은 약했지만 성적으로 잘 맞았던 남성을 둘 다 사귀었는데 후자와의 관계가 더 오래 갔다. 남녀에게 성은 가장 본질적 요소다.

# 섹스는 운전이다

D=난 사실 동거를 하고 싶다. 꼭 섹스 때문이 아니라 30년 가까이 따로 살던 남녀가 함께 사는 게 쉬운 일인가. '살아 보고 결혼 하자'란 말이 이치에 맞다. 요즘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 동거 많이 한다는데 난 찬성한다.

C=섹스는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초보운전 때 생각해 봐라. 땀 비질비질 흘리며 무조건 앞만 보고 간다. 그러다 조금 실력이 붙었다 싶으면 냅다 액셀러레이터만 밟는다. 사고도 나고, 단속도 걸리면서 주변도 살피고 빠른 게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닫는다.

B=여성이 이만큼 성적으로 개방될 수 있었던 것은 콘돔 때문이다. 임신에 대한 불안감은 늘 여성의 성적 만족을 저해하는 요소다. 때론 삽입보다 애무를 즐기는 여성이 많은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근데 아직도 남성에겐 삽입이 전부다. 그런 남성을 보면 이 작품에 나와 있는 대사를 그대로 하고 싶다. "연습 좀 하고 오세요."

# 중심을 잡아라

E=이 작품 때문에 성교육 많이 했다. 딴 게 아니라 갖가지 포즈를 위해 '야한 동영상'이라는 인터넷 포르노를 많이 보았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란 거 절감했다. 이토록 학습할 거리가 천지에 깔려있는지 처음 알았다.

D=소녀적 취향을 버리지 못했다고 할지 몰라도 난 여전히 고교시절 손도 못 잡고 가슴 떨리는 그 순간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후 애인을 사귀어 잠자리 같이 했던 것보다 그때가 그립다.

A=난 사실 아직도 남자랑 관계 맺은 적이 없다. 예전엔 이런 게 자랑이었는지 몰라도 요즘은 이런 얘기 못한다. 오히려 이상하게 본다. 얼마나 인기가 없으면 그럴까 친구들이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B=둘 다 과잉이다. 과거가 여성의 처녀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면 최근엔 성적인 자유분방함이 쿨하고 세련된 것처럼 포장되기도 한다. 공자님 말씀 같지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나의 욕망에 얼마나 솔직한지, 그리고 얼마나 컨트롤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섹스도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

정리=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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