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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강박신경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회사원인 최모씨(27)는 미혼으로 최근 어렵게 직장을 구해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이상한 어려움에 계속 부닥쳐 정신과를 찾아 왔다.
원래 주위에서 소심하고 꼼꼼하다는 평을 듣기는 했으나 요즘은 몇가지 행동을 안하려고해도 반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비정상적인 증상이 생겼다.
최씨는 우선 회사문을 들어설 때 깨끗한 수건으로 손잡이를 잡고서야 문을 여닫을 수가 있다. 걸인이 그 문을 한번 잡는 것을 본 이후부터다.
그럴 필요까지 없는 걸 알고 안하려고 다짐하지만 병균이 묻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리 정돈이 지나치고 퇴근할 때는 책상 서랍이 잠겼는지 세번 확인해야 했다. 네번 확인하고 싶으나「4」는 재수 없는 숫자이기 때문에 피한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오면 바지를 갈아 입어야 했다. 소변본 후의 흔적이 분명 있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최씨 같은 사람이 「강박신경증」환자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구호가 있듯 한번쯤 서랍을 확인하는 건 건강한 꼼꼼함이다. 두번 확인하는 것도 눈감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는데 세번 네번 반복 확인하는 일종의 의식같은 행동은 분명 문제가 있다. 경우에 따라 강박신경증은 원하지 않거나 쓸데 없는 생각을 떨쳐 버리려 해도 계속 떠오르는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생각들은 대개 끔찍하고 더럽고 음담패설적인 것이어서 당사자는 더욱 고통스럽다. 예컨대 「내 아이를 죽이지 않을까」라든지, 「우리 어머니는 매춘부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물귀신처럼 따라 붙곤 한다.
강박신경증은 강박행위나 강박감을 동반하고 2차적으로 우울과 불안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자신의 강박증상이 스스로 법이라는 것을 알고 이에 저항하는 특징이 있다.
우리는 최씨에게 왜 강박행위가 나타났는지를 본인이 깨달아 알도록 시도하는 정신치료를 1주에 1회 실시하면서 항우울제를 투여했다. 최씨의 경우 융통성 없는 엄격한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짐작됐다.
잠재해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으로 죄책감이 따르고 그 죄책감을 씻어내듯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행동을 한다는 윤곽이 잡혀갔다.
그러나 최씨가 그것을 철저히 깨닫는데는 한계가 있는듯 보였다. 필자는 이러한 마음속의 역동을 깨닫게 하려는 시도를 잠시 유보하고 『바지에 오줌이 튄 것 같아 그걸 빨아야 하는 모습이 우습지 않느냐』고 지적하면서 그런 자신의 모습에 웃음을 던져 보도록 했다.
또 하루 한시간 정도 책상을 마구 어질러 놓고 견뎌보게 했다. 그로서는 힘든 일이었다. 처음에는 엄두도 못내던 최씨는 치료 10주후부터 조금씩 그런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석달후 최씨는 혼자 견뎌 보겠다고 말했다. 다른 신경증보다 까다로운 강박신경증 환자치고는 성공적인 예였다.
김 현 우 <국립의료원 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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