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한일 자유무역협정 협상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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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관세 등 무역장벽이 없는 하나의 시장으로 묶일 날이 멀지 않았다. 양국 정상은 오는 20~21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두 나라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기 위한 협상에 들어간다고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협상 체결 목표시점은 앞으로 2년 뒤인 2005년.

두 나라 경제가 자유무역지대로 묶이면 1억5천만 인구에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7%를 점하는 거대 시장이 탄생하게 된다. 이는 미국이 포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지대와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경제협력체가 된다.

양국이 FTA를 서두르는 것은 경제의 장기 성장기반을 튼튼히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일본은 한.일 FTA를 중국에 대한 견제카드로 활용할 속셈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은 한.중.일의 동북아 경제협력체를 향한 첫 걸음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농업부문에서 이득이 많아 농민들을 설득하기 쉬울 것이라는 점도 부각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상대적으로 타격이 예상되는 중소기업들도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다. 중소기업청이 최근 4백여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6%가 찬성했다.

그렇지만 한.일 FTA는 한국의 산업기반을 뿌리째 뒤흔들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일본의 경제규모가 한국의 여덟배를 넘기 때문에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경제의 예속구조만 심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박번순 수석연구원은 "미래의 이득은 희미한 반면 무역역조 등 눈앞의 손해는 뚜렷이 보인다"며 "결국 가야 할 길이지만 정부와 재계가 하나가 돼 치밀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견뎌내야 할 무역역조 심화=한.일 FTA를 위해선 단기적인 대일 무역적자의 확대를 감수해야 한다. 일본의 평균 관세율은 2%대지만 한국은 8%대로 훨씬 높다. 따라서 당장 두 나라 간에 관세가 없어진다고 할 때 한국의 손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현 상태에서 관세장벽이 사라질 경우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최대 60억달러나 일시에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부품.소재를 싼 값에 들여와 만든 완제품을 다른 나라에 수출해 늘릴 수 있는 무역흑자를 감안해도 전체 무역수지는 한해 15억달러 정도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10년 뒤의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장기적으론 대일 무역적자 증가액이 한해 36억달러 늘어나는 정도로 완화되고, 전체 무역수지에는 6억달러 정도의 개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게 KIEP의 관측이다.

KIEP 정인교 연구위원은 "FTA가 되더라도 한국의 관세는 산업의 민감도에 따라 5~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하.철폐될 것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기술력과 생산력을 키우며 나름대로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대되는 투자확대.기술이전=한.일 FTA가 성공하기 위해선 무역자유화뿐 아니라 기술제휴와 자본이전 등을 통해 두 나라 산업이 수평적 분업관계에 이르게 하는 산업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각종 규제 등 비관세 수입장벽도 제거해야 한다.

한.일 두 나라는 앞으로 FTA 협상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도 깊이있게 다루기로 합의해둔 상태다. 성균관대 김영환 교수는 "우리 시장을 여는 대신 자본과 기술 이전을 위한 일본의 양보를 확실히 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FTA는 또 국제적 기업들이 일본 시장을 겨냥해 한국에 우회 투자하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위원은 "일본 기업들은 여전히 과잉투자의 부담에서 허덕이고 있어 투자확대 또한 적잖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의 업그레이드 계기=굳이 일본과 FTA가 아니더라도 세계적인 지역경제 통합흐름과 중국의 무서운 추격을 감안할 때 우리 기업들은 계속 눈을 밖으로 돌리며 경쟁력을 키우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다.

국민대 김종민 교수는 "일본이 더 한.일 FTA의 성사에 몸이 달아 있는 상황"이라며 "일본과의 산업협력 체제를 잘 이끌어내면서 국내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할 경우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일본과 중국의 견제심리를 감안할 때 한국은 한.일 FTA를 발판삼아 미래의 한.중.일 3국의 FTA 협상에서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해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광기.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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