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후』중장서 시도한 파격은 신선한 감각|『이 겨울에』재치 있는 언어선택에 타고난 재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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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선후평>낯익은 얼굴보다 새로운 얼굴을 맞고 싶다. 소재도 시조로 써 왔던 것들보다는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것들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쉬지 않고 작품을 보내 오는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지만 되풀이 아닌 또 하나의 시작으로 시조를 써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오륙도』(박영석)는 이미 이은상 선생이 노래했던 대상을 단수로 다시 쓰는 용기를 사줄만하다. 초·중장은 눈 줄데가 별로 없으나 <빈다다 쓸고 닦으며 먼 뱃길을 열고있네>의 종장은 지은이가 시조의 가락을 잘 알고 있음을 말해준다.
『어느 날 오후』(김예나)는 중장에서 시조의 기본형을 헝클어뜨리고 있지만 크게 무리는 없다. 일부러 파격을 하려고 할 필요는 없지만 한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롭게 자기 것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마음에 든다.
『이 겨울에』(손솔라)는 말이 재치가 있어 더 노력하면 좋은 시조를 쓸 솜씨가 보인다.<바람은 휘몰이고><마음 귀 열어 하늘을 보고싶다>같은 구절은 우연의 소산이 아닌 타고난 재능을 읽게 한다.
『영일만』(조성대)은 바다에서 <활>과 <새>를 꺼내든 것이 눈에 띈다.

<활시위로 당겨놓은 저물길><과녁 잃은 나의 새>가 여태까지 다른 시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하나의 발견이다. 다만<구름도 울고 나도>가 처져 있다. 종장을 추켜세우는 법을 배워야겠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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