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아줌마] 꿈을 디자인해 놓은 고교생 '떡잎 디자이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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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청소년디자인캠프에 참가한 윤진혁군이 포트폴리오를 발표하고 있다.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은 안 듣고 연습장에 이런저런 낙서를 했던 기억이 있다. 남들은 무엇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난 미래에 내가 이끌어 보고 싶은 브랜드 작명과 로고를 그려보곤 했다. "브랜드 로고는 무슨 색을 쓸까? 로고 디자인은 박스형이 좋겠지?"라는 생각에 500원짜리 연습장 한 권이 금세 찰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브랜드나 패션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공부 안 하고 쓸데없는 데 신경 쓴다'는 말과 같았다. 지금도 별반 다를 것은 없겠지만 그때의 화두도 역시 '대학'이었다. 대학만 가고 나면 뭐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딴 생각'을 담은 연습장을 덮곤 했다.

최근 무서운 '고딩'들을 만났다. 국가청소년위원회와 제일모직이 공동으로 주관한 '청소년 패션 디자인 캠프'에서다. 패션에 관심이 있거나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패션 산업 현장을 체험하는 행사다. 현직 디자이너와 마케팅 담당자, 패션연구원이 직접 강사로 나서 패션 개론, 디자인 실습, 포트폴리오 제작, 브랜드 이해, 디자이너 및 모델의 이해 등을 강의했다.

캠프 마지막날 '자신을 표현하라'는 주제 아래 16명의 참가자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발표에 나섰다. 다들 "너무 떨려요"라고 말했지만 하나같이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정다정(18)양은 블랙과 화이트, 레드를 기본 색감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상에, 벌써 자신의 브랜드 전개 방향까지 머릿속에 담고 있다니.

한복을 주제로 삼은 학생도 있었다. 한복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나선화(18)양은 "결혼할 때 웨딩 드레스 말고 한복을 입고 하세요"라고 권했다.

윤진혁(19)군은 자기가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의 신제품 라인과 샘플 특성까지 훤히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기존 패션 산업 종사자의 지식 수준을 위협할 정도라고나 할까.

패션에 미쳐 있는 이 '고딩'들이 마냥 부럽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10대에 이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꿈을 향해 내달리고 있지 않은가. 영어와 관련한 교육, 클래식 음악이나 순수 미술처럼 소위 말해 고급 문화 분야에서는 언제나 조기교육이 화두지만 패션에 관한 한 아직은 그렇게 포용적이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 보여준 것이라 더욱 그렇다. 하나 가득 낙서가 담긴 내 학창 시절의 연습장은 지금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조차 없는데 말이다.

조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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