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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분노 무마 위한"극약 처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국외탈출 도중 체포돼 연금중인 것으로 알려졌던 차우셰스쿠 부부가 25일 비밀 군사재판에서 사형이 언도되고 곧바로 총살형에 처해졌다는 소식은 최근 루마니아에서 잇따라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들과 함께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날 특별 군재는 차우셰스쿠 부부가 살인죄를 비롯, 5개의「루마니아에 대한 중대하고도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범했기 때문에 사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루마니아의 임시정부인 구국위원회가 이처럼 서둘러 차우셰스쿠 부부를 처형한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될 수 있다.
하나는 지금도 일부에서 완강하게 저항중인 친 차우셰스쿠 보안군 병력들로부터 항거의 구심점을 빼앗음으로써 그들의 사기를 꺾자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함으로써 분노가극에 달한 국민들을 무마할 목적에서 그들을「속죄 양」으로 바쳤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고려한다 해도 그동안 차우셰스쿠 치하에서 숱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도덕성 하나만으로 견뎌 온 구국 위원회 주도 인사들이 이처럼 비상수단을 써서 도덕적으로「무리한」일을 감행했다는 것은 세계 여론의 비판을 받을 우려가 없지 않다.
더욱이 일반재판 아닌 군사재판, 그것도 비밀재판에서 처리했다는 것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앞으로 루마니아에서 과거 차우셰스쿠 아래서 전횡을 일삼던 세력들에 대한 대령유혈 보복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최근의 루마니아 사대로 6만명 이상의 인명이 살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들 유족이 사적원한을 바탕으로 개인적 보복에 나설 때 루마니아 전체에 보복의 피 바람이 불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럴 경우 가뜩이나 그 위기관리 능력 여부가 의문시되는 소수 반체제 인사중심의 구국위원회가 상황을 통제해 나갈 수 있을지 그 전망은 매우 어두운 상태다. 최악의 경우 무정부 상태속에서 테러가 횡행하는 극도의 무질서가 판을 칠지도 모른다.
이같은 상황에선 군부의 향배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차우셰스쿠 타도에 결정적 공헌을 한 정규군의 구심인물인 밀라투르 장군이 최근 임시정부의 국방장관직에 취임, 일단은 군부와 구국 위원회가 협조관계에 있으나 사태가 악화될 경우 질서유지를 생명으로 하는 군부가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렇게 될 경우 루마니아는 독재자 축출 후 군부집단이 권력을 번갈아 장악, 국가를 요리하는 소위 중남미형 군사 독재 정치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
루마니아 임시정부에 대한 국외로부터의 지지도 이번 차우셰스쿠 부부 처형으로 상담한 영향을 받을 것 같다. 루마니아 사태에서 구국 위원회를 가장 먼저 지지한 바 있는 미국· 프랑스는 차우셰스쿠 부부 전격처형에 대해 즉각적으로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
한편 임시정부는 24일 난국수습을 위해 내년4월 다당제에 입각한 자유 총선을 실시하기로 하고 조만간 헌법 개정안을 마련할 것을 골자로 하는 23개 조항의 국정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그동안 원성의 대상이었던 농공단지 조성계획 철폐▲바르샤바 조약기구 잔류 ▲국호인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루마니아 공화국으로 개칭 ▲식량수출 동결 및 석유수출 감축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국정방안은 외견상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개혁정책들과 비슷한 것으로, 앞으로 루마니아도 이들의 뒤를 따라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구국 위원회를 이끄는 마네스쿠 전 외무장관을 비롯, 40여 구국 위원회 멤버들이 이러한 정책을 끌어갈 행정능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구국 위원회 내부에서도 마네스쿠의 지도력에 대해 지지가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국민들로부터의 압력 또한 거세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차우셰스쿠의 철권통치와 극도의 경제적 궁핍에 시달려온 국민들은「자유와 빵」을 한꺼번에 요구하고 나설 것이 뻔하며 차우셰스쿠 추종세력들에 대한 일종의「마녀사냥」을 대대적으로 벌일지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놀 때 구국 위원회가 해야할 일은 하루빨리 국가질서를 확립하고 자유 총선을 조속히 실시, 합법적 정통성을 가진 새 정부에 정권을 이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구국위원회가 순탄하게 이끌어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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