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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쓴 과학 책 잘 팔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일반인에겐 복잡하고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자연과학의 세계를 재미있는 이야기체로 쉽게 풀어 쓴 이른바 교양 과학 서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들 교양 과학서적은 ▲과학 하면 으레 연상하게 되는 복잡한 숫자·부호·수식의 나열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보고 접하는 낯익은 사물들을 주제로 선택하며▲의문형으로 설정한 소 주제마다 예화를 풍부하게 삽입하는 등 독자들이 책을 읽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과학의 이치를 깨닫고 논리적 사고의 확대와 심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서점 에 선보이고 있는 교양 과학서적들은『재미있는 이야기 수학』(전원 문화사) 『재미있는 수학 탐험』(팬더 북)『재미있는 물리 이야기』(팬더 북)『재미있는 물리여행 I·2』(김영사)『재미있는 별자리여행』(김영사)『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세계』(참작과 비평사)『생활속의 물리학』(이성과 현실)『흥미있는 화학이야기』(이성과 현실)『양초의 과학』(동천사) 『책·시계·등불의 역사』(연구사) 등 20여 종을 넘고 있다.
「과학 도서는 팔리지 않는다」는 출판계의 속설과는 달리 최근 들어 이들 교양과학 서적에는 만만치 않게 고객들이 몰리고 있다. 루이스 엡스타인과 폴휴이트의 공저『ThinkingPhysics』를 우리말로 옮긴 김영사의『재미있는 물리여행I·2』는 초판 발행이래1년여도 채 안돼 이미 20판을 찍었고 역시 소련 물리학자 Y. I. 페렐만 의원 저『흥미있는 물리학』을 번역해 엮은 이성과 현실의『생활 속의 물리학』도 초판 3개월만에 3판을 발행하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딱딱하고 어려운 과학의 세계를 다룬 책들이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갖고 그중 일부가 베스트셀러의 목록에까지 오르는 지극히 이례적인 현상에 대해 출판계는『과학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먼 학문으로 생각하던 독자들에게 일단 흥미유발의 동인을 던져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라며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학습과정에서의 주입식 암기 때문에 논리의 인과관계를 적절히 잇지 못한채 과학이라면 우선 염증부터 느끼던 일반 독자들에게 이들 책은 재미있는 이야기와 쉬운 문체를 사용하면서 고도의 과학적 사고나 지식을 함양하게 하는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긍정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일부 출판사의 교양과학 서적이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남의 원전을 여과 없이 베껴내는 등의 구태의연한 행태를 보이고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성과 현실이 퍼낸『흥미 있는 화학이야기』같은 책이 그 대표적인 예.『우주만물을 이루고 있는1백여개 화학원소를 발견해내기까지 인류와 과학자들이 기울여온 노력과 고심의 역정을 시대별로 기록했다』는 이 책은 황근수라는 엮은이 이름을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본문 내용을 쓴 원저자의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다.
이 책에는 중간 중간에 계급적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고,「엥겔스 선생」이라든지,「각이한 조건과 환경에서 각이하게 발전」「제 2차 세계 대전사기에 독일제국 주의자들은」 「임진 조국 전쟁시기…왜 적을 족쳤다」「미 제국주의자들은 지난 날 우리의 조국 해방전쟁시기…」등 우리가 통상 사용하지 않는 낯선 표현들이. 섞여있어 북한 원전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혐의를 짙게 풍겨주고 있다.
이는 과학적 발견의 이야기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표현의 비약이며 비록 아직은 북한과 저작권 시비가 벌어질 상황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의 원전을 빌릴 때는 그같은 사실만이라도 적시하는 것이 출판인의 도리이자 양식』이라는게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출판계의 한 인사는『과학서적에까지 북한식 용어와 표현이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우리에게 그것을 능가할만한 과학의 지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아닌가』고 개탄했다. <추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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