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징계 "눈가림"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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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경찰관에 대한 징계가 객관적 기준 없이 여론무마를 위한 형식에만 치우쳐 내부기강이 해이해 질뿐 아니라 징계로서의 효과가 상실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경찰관계자들은 대형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여론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일선 하급경찰은 물론 간부들까지 지휘책임을 물어 무더기로 징계처분을 내리지만 여론이 잠잠해지면 다시 복직시키는 등 징계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경우가 잦아 경찰 내부에도 『징계가 경찰조직의 기강확립에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고 이번의 심효섭 경무관 사건처럼 징계후유증이 또 다른 사건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형식적 징계=심경무관은 서울강동서장으로 재직 중이던 85년 11월 대학생들의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농성사건으로 직위 해제된 뒤 경찰간부후보생 동기인 당시 치안본부장의 도움으로 복직되고 이어 87년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치안본부는 심경무관이 치안본부 감사과장으로 복직된 뒤에도 직위해제를 당했던 후유증에 시달리다 당시 구내이발소 면도사로 있던 김모씨(28)와 깊은 관계에 빠져 권총난동까지 이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87년 이한열군 사망으로 당시 서대문경찰서 김모 서장이 직위 해제됐으나 88년 경무관 승진내정자로 올랐다가 반대여론이 일어나 승진이 좌절됐고 올해 6월 5일에는 대치파출소 피의자 폭행치사사건으로 당시 강남경찰서 이모 서장이 직위 해제됐으나 9월 2일자로 시경의사과장에 복직되는 등 직위해제-복직으로 이어진 형식적 징계의 경우가 상당히 많다.
◇과잉징계=4일 발생한 주택은행 산본출장소 4인조 공기총 강도사건으로 안양경찰서 산본지서장 유동춘 경사가 사건당일 직위 해제됐다.
유경사의 징계에 대해 6명의 경찰관이 5만명의 인구를 관할하는 불합리한 치안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여론 무마용 과잉징계라고 반발한 일선 경찰관들이 잇따라 치안본부장실로 항의전화, 한동안 본부장실 경찰경비전화가 불이 나는 등 한바탕 소동을 빚었다.
또 10월에는 대학생들의 주한 미 대사관저 난입사건으로 당시 남대문경찰서 지모 서장이 직위 해제돼 과잉징계라는 말썽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선 형사들은 『직위해제가 파면 다음으로 무거운 징계인데도 경찰간부들이 3개월 이내에 다시 복직시킬 수 있다는 조항을 악용, 직위해제를 남발하고 있다』며 『이 바람에 징계의 효과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서울청량리경찰서 김모 경사는 『징계의 기준이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해 갈피를 잡을 수 없다』며 『기강확립을 위해 징계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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