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만들기] 28. 상공부 직원 주택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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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상공부 종합청사 부지 매입을 의뢰한 지 한달쯤 지난 1970년 3월, 이낙선 상공부 장관이 다시 서울시장실을 찾아와 상공부 및 상공부 산하기관 직원들을 위한 주택용지 약 30만평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했다.

상공부 종합청사 옆에 직원 주택단지를 조성하면 출퇴근 등 여러 면에서 편리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땅값 급등이 예상되는 곳에 집을 마련해 주면서 직원들에게 생색을 내자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았다.

김현옥 시장 입장에서는 영동 1, 2지구 9백만평 가운데 30만평쯤 매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며, 金시장의 지시를 받은 도시계획국 간부도 같은 생각이었다.

金시장과 주택단지 부지 매입에 합의하고 집무실로 돌아온 李장관은 곧바로 상공부 및 산하기관 간부들을 불러 기관별로 주택조합을 결성하고 조합원 1인당 약 50만원(1백평 기준)씩 거두라고 지시했다.

이때 각 주택조합에 보낸 공문의 내용은 ▶조합원 주택용지 규모는 국장(산하기관 이사) 이상은 1백50평, 과장 이하는 1백평 등 두 종류로 하고▶다른 부처 및 언론사를 고려해 당분간 극비에 부치고 외부에 누설되지 않도록 할 것 등이다. 구획정리사업이 끝나면 택지 규모는 약 40% 공제돼 각각 90평, 60평으로 줄어든다.

상공부 본부.표준국.특허국.한국전력.석탄공사.포항제철.중석공사.광업진흥공사.호남비료.충주비료.염업공사.카프로락탐.석유지원공사 등이 주택조합을 결성했다. 그리고 모든 조합을 총괄하는 '상공부 산하 남서울 주택조합연합회'가 본부 총무과에 설치됐다.

상공부 측은 당초 평당 6천원에 30만평을 매입해 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했다. 또 가급적 같은 조합의 직원들은 한곳에 모여 살 수 있도록 규모가 큰 필지를 물색해 달라고 요구했다. 70년 4월 25일께 시작한 땅 매입은 연말에 마무리됐다. 평당 평균 5천6백28원에 모두 29만3천7백66평을 사들였다.

그런데 땅 매입에는 상공부.서울시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무서운 함정이 있었다. 몽골의 고비사막처럼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한 부분을 두부모 자르듯 해 30만평을 매입하는 게 아니었다. 상공부가 요구한 두 가지 조건에 맞는 땅은 산지(山地)밖에 없었다.

큰 산 하나를 통째로 매입하면 많은 직원이 한 울타리에서 살 수 있는 주택단지 조성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매입한 땅 면적의 87%인 25만5천5백평이 산(山)번지를 갖고 있는 임야였다. 임야에는 급경사지도 있었고 늪지도 있었다. 필지당 면적도 50평에서 10만평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더욱이 경관이 뛰어나 개발해서는 안 될 우면산 기슭의 골짜기도 들어 있었다.

결국 상공부 주택단지 사업은 온갖 말썽과 관련자 문책 등의 결과를 남긴 채 무산되고 말았다. 74~75년 조합원들은 매각 가능한 땅을 모두 팔아 매각대금을 나눠 갖고 조합을 해산했다. 땅값 상승으로 손해를 본 조합원은 아무도 없었다. 상공부 주택단지 사업의 유산이 하나 남아 있다.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서울시공무원교육원이다. 교육원 부지는 원래 주택용지로 매입한 땅이었는데 경관이 좋아 일반에 팔지 않고 서울시에서 인수한 것이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정리=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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